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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2 18:13:18

정실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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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창작물에서의 정실 히로인

1. 개요

정실부인()은 남자와 공식적으로 결혼한 배우자(본처)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생전에 왕후, 황후 칭호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해당된다.

2. 특징

먼저 결혼한 부인과 사별 혹은 이혼한 남자가 재혼을 했을 경우 새 부인은 후실 혹은 후처라고 하는데, 오해하기 쉽지만 이쪽도 정실은 정실이다. 사별한 첫 왕비/후궁/재혼한 새 왕비가 있는 왕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후궁은 어디까지나 측실이고, 첫 왕비(사별)와 새 왕비(재혼)는 둘 다 정실인 것. 조선왕조실록에 국가에 변란이 생기면 1년 내에 혼인한 경우 본부인 다음 얻은 처 또한 나라에서 정실로 인정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풍속은 여말부터 생겨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 같은 특수한 지위의 사람은 지위가 대등한 정실부인이 여러 명인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태조는 부인이 29명인 것으로 유명하나 이중 정실부인이 6명이고, 23명은 후궁이었다. 단 이건 왕이라서 특이한 거고 귀족 이하 일반인들은 보통은 두 번째부턴 으로 정실부인과 다르다고 봤다.

이슬람권의 일부다처제 사회에서는 축첩제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모든 아내들을 순서와 상관없이 정실로 간주해서 모두 평등하게 대해줘야 한다. 아예 이슬람 율법에서 공식적으로 "모든 아내를 평등하게 대우해줄 자신이 없으면 일부다처제 할 생각은 접어라."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선물을 사주려 해도 특정 아내에게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거나 현저히 높은 선물을 사줬다가는 편애로 이혼 사유가 되기 때문에 무조건 동등한 가치의 선물을 줘야 하며 하다못해 한 배우자에게 생일선물을 사주면 나중에 다른 아내들의 생일에도 그 액수와 비슷한 값의 선물을 줘야 한다. 이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웬만한 왕족이나 석유재벌들한테도 부인 여럿 두는 게 의외로 그렇게 쉽지는 않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그냥 다른 문화권의 일부일처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산다고.

반대말은 측실(첩실). 정실부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남편이 측실을 정실로 올리거나[1] 정부와 결혼하여 정실로 올려주는[2] 경우도 역사적으로 존재하기는 했다.

3. 창작물에서의 정실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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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사의 현덕왕후희빈 장씨가 이런 사례. 다만 무고의 옥으로 희빈 장씨가 죽은 후로 숙종이 후궁을 왕비 삼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여 희빈 장씨를 마지막으로 이런 사례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고종순헌황귀비 황후 책봉 상소에 대해 숙종의 후궁 왕비 책봉 금지령을 이유로 불허하여 순헌황귀비를 황후로 삼지 못 했다.[2] 영국사의 앤 불린이 이런 사례. 사실 현대의 아내 버리고 내연녀와 결혼하려는 불륜남도 결국에는 이 사례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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