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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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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51426><colcolor=#fff> 대한민국 제46대 국방부장관
정경두
鄭景斗 | Jeong Kyeong-d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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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0년 9월 13일 ([age(1960-09-13)]세)
경상남도 진주시
재임기간 제35대 공군참모총장
2015년 9월 16일 ~ 2017년 8월 8일
제40대 합동참모의장
2017년 8월 20일 ~ 2018년 9월 21일
제46대 국방부장관
2018년 9월 21일 ~ 2020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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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51426><colcolor=#fff> 배우자 김영숙
자녀 슬하 1남
학력 진주봉원국민학교 (졸업)
진주중학교 (졸업 / 24회)
대아고등학교 (졸업)
공군사관학교 (학사 / 30기)
국방대학교 (행정학 / 석사)
한남대학교 (경영학 / 석사[1])
종교 개신교[2]
경력 제46대 국방부장관
군사 경력
임관 공군사관학교 (30기)
복무 대한민국 공군
1982년 ~ 2018년[3]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공군)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 보직 공군참모총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장
공군참모차장
공군남부전투사령관
공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제1전투비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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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논란
3.1. 논문 표절3.2. 위장전입3.3. 천안함 및 연평도 발언3.4. 허술한 해상 경계 및 사실관계 은폐 논란3.5. 국방위에서의 발언 뜸들이기 논란3.6.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관련
4. 주요 이력
4.1. 학력4.2. 약력
5. 여담
5.1. 역대급 운장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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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군인, 정치인. 최종 계급은 공군 대장. 제35대 공군참모총장, 제40대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했다. 전역 후 제46대 국방부 장관, 아주대학교 국방디지털융합학과 교수 및 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사이버안보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2. 생애

파일:o_1568680_1308645.jpg
▲2013년, 당시 남부전투사령관 정경두 소장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으로, 진주중학교와 대아고등학교를 졸업 후 1978년 공군사관학교 30기로 입학했다. 이후 1982년 공군 소위로 임관하였고 조종장교로 근무했다. 주기종은 F-5. 제1전투비행단장, 계룡대 근무지원단장, 공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남부전투사령관을 거쳐 2014년 4월 공군중장으로 진급해 공군참모차장을 지냈다. 2015년 4월 장성 정기인사에서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이동했고, 2015년 하반기 장성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 공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2017년 8월 8일,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합동참모의장으로 지명되었다.[4] 동월 1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합동참모의장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로부터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고, 이례적으로 당일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전자결재 방식으로 합동참모의장에 임명되었다.

2018년 8월 30일,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방부 장관에 내정되었고, 9월 21일자로 취임하였다. 국방부장관 재직 시 아래에 나온 것처럼 언론에 보도된 사건사고들이 많아 경질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럭저럭 임기를 채우고 2020년 8월 28일 후임자로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내정됨에 따라 퇴임하게 되었다.[5]

1995년과 2005년에 항공자위대간부학교[6]에서 지휘참모과정[7]과 AWC 교육[8]을 받는 등 국군에 드문 일본통이자 자위대 전문가이다. 아베 신조 집권 이후 일본의 안보법제 변화 등으로 인한 자위대의 위상 변화가 인사에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1.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

2015년 하반기 장성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 공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공군에서는 2연속으로 2기수를 건너 뛰어 참모총장이 임명된 상태라 이번에는 최차규 당시 참모총장의 바로 밑 기수인 29기에서 총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였으나[9], 정경두 중장이 임명됨으로써 중장 이상 지휘부 6명 중 3명이 교체됐다.[10] 예상을 깨고 그가 참모총장이 되었을 때 공군은 반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11] 파격적인 인사에 대해서 2010년대 중반의 장관급 인사가 으레 그렇듯 박근혜 정부 쪽 라인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 시점과 임기 종료가 맞아떨어지고, 일선 장병들 사이에서의 신망이 대단히 높아서 큰 무리없이 받아들여졌다.
공군참모총장 시절 제주를 찾아가 남부탐색구조부대 창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에 대해 이성용 당시 공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이 취재진과 문답하기도 했다.

2.2. 파일:Ssap_nogada.jpg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파일:정경두 합참의장.jpg
2017년의 정경두 합참의장

파일:20170808514435.jpg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2017년 7월, 해군 출신인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임명된 후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합참의장 후보로 언론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결국 2017년 8월 8일, 문재인 정부의 첫 합참의장으로 내정되었다. 공군 출신으로는 제25대 합동참모의장이었던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에 이어 두 번째이며, 비(非)육군 출신으로는 역대 세 번째다.

합참의장으로 내정된 배경에는 역시 송영무 장관 휘하 지휘부의 해군, 공군 전력 강화에 대한 의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인품에 대한 호평도 한몫을 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임 합참의장인 이순진 대장 못지 않게 일선 실무자들 평이 유난스럽게 좋다.[12] 비록 공군의 경우 육군과 비교해서 간부들이 병들에게 잘 대해주는 경향이 있긴 하나, 참모총장 보임 전후로 공관병 두지 않기, 명절에 선물 받지 않기, 진급 전 초조주 관행의 철폐, 그의 가족들은 병, 간부들과 함께 연락버스를 이용하는 등 공군 내 부조리 타파에 앞장섰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 하급자에게 피해나 불편이 가지 않도록 각별하게 주의하는 장성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2017년 8월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정부 인사 중 가장 도덕적인 분"이라며 호평하는 가운데, 주로 정책 질의가 오갔는데 "(북핵 동결에 대한 대가로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연합 훈련 축소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고, 전술핵 배치의 경우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과 모순된다"면서 사실상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아울러 군 당국이 유사시 개전 3일 이내에 한반도에서의 제공권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청문보고서는 무난히 채택되었고, 이날 문재인 대통령도 전자결재를 통해 정식으로 합참의장에 임명했다.


2017년 8월 20일 임명식이 거행되었다. 공교롭게도 취임 다음 날이 2017년도 UFG 한미연합훈련 개시일이다. 주말에 취임식을 하는 이유가 UFG 도중에 취임식을 거행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합참의장 이취임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처음으로 취임식 자리에서 현직 대통령의 경축사를 받은 합참의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은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의 군 수뇌부 인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향후 정부의 국방개혁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고, 을지훈련 개시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굳건한 국방태세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다목적 행보로 평가된다.

정경두 합참의장은 취임식 자리에서 "적이 도발한다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새로운 전쟁수행 개념을 정립하고 한국형 3축 체계(Kill Chain·KAMD·KMPR)의 조기 구축과 전력획득 절차의 투명성·효율성을 보장해 주도적 군사작전 수행능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2017년 9월 27일 가와노 가쓰토시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장과 통화를 갖고 북한 군사위협에 대한 평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위에도 나오듯이, 정경두 합참의장은 일본 항공자위대의 간부 과정에 유학을 다녀온 적도 있는 한국군의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2017년 12월 30일, 항공통제기 피스아이에 탑승해 지휘비행을 했다.

2018년 4월 26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수행단에 포함된 것이 알려졌다. 북한에서 박영식 인민무력상(= 국방장관격)과 함께 리명수 총참모장을 모두 파견하면서 격을 맞춘것으로 보인다.[13] 이로써 정 합참의장은 현역군인 최선임 장성인 합참의장으로서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한 첫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2018년 4월 27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악수를 나누었다.

2.3. 파일:대한민국 국방부장관기.svg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2018년 8월 30일,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방부 장관에 내정되었다. 정식으로 임명되면 김정렬, 주영복, 이양호에 이어 24년 만에 역대 네 번째 공군출신 국방수장이 된다.[14] 합동참모의장 청문회를 수월하게 통과 했던 만큼, 무리없이 임명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지만 청문회 질문에서 했던 답변이 문제가 되어#보고서가 한번 불발되고 나서야 임명이 재가되었다.

현역 군인신분인 상태에서 내정되었기 때문에 취임식 날 전역식도 동시에 치를 예정이다. 김태영 전 장관에 이어 전역 직후 바로 장관에 취임하는 케이스인데, 김장수 전 장관처럼 군 복무 도중에 내정이 되었다.[15]

시기 또한 절묘한 게 9월 내지 10월 즈음이면 미 국방부에서 T-X 프로그램 최종 사업자를 발표하게 된다. 사업 규모가 미군 측 수요만 최소 10조에서 30조 원이고, 제3국 수출시장까지 고려하면 최대 100조 원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사업이기 때문에 록마-KAI 컨소시엄에 힘을 실어주기 좋은 공군 출신인 정경두 합참의장을 장관에 임명하려는 거라고 추측할 수도 있었다.[16]

2018년 9월 19일, 청문회 준비 과정 중에서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 채택은 불발되었으나 결국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다.

2018년 9월 21일, 이날 오전 대장 이임 및 전역식을 진행하고 오후에 장관 취임식을 가졌다.[17]

2018년 9월 22일, 취임후 현충원 참배를 마치고 논산 육군훈련소를 방문하여 부대를 순시하고 명절연휴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훈련병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격려하였다.

2018년 11월 1일, 제50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다. 정 장관은 SCM 회의 직전 미 국방부에서 미 국방부 의장대를 사열했다. 한국 국방부 장관이 미 국방부 의장대를 정식 사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장행사가 진행되는 중 한미 양국 국가가 연주됐고, 예포 19발도 발사됐다.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을 환영하는 미국 측의 의장행사 때 예포가 발사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큰 환대를 받은 정 장관은 제50차 SCM에서 전작권 환수 이후 연합방위태세의 밑그림이 담긴 연합방위지침에 합의했다. 8개 항으로 된 연합방위지침은 전작권 환수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철수하지 않고, 지금의 한미연합군사령부 형태의 지휘구조를 유지하며 연합사의 사령관은 한국군 대장, 부사령관은 미군 대장이 맡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2019년 2월 아래 항목에 나온 것처럼 천안함 전사자 비하로 오해될 발언을 하여 자유한국당에 의해 정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국방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발의됐다"고 전했으며 국회 관계자는 "해임 건의안은 의사국장이 본회의에 보고한 시간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까지 표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 장관 해임 건의안에 대한 표결은 3월 29일 오후 2시부터 표결이 가능하고 이틀 뒤인 31일 오후 2시에 종료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이 반대하여 해임건의안 처리가 무산되었다.

2019년 3월 22일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제2함대 허위자백 사건 등 군의 기강해이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에 의해 다시 해임건의안이 제출되었다.#

2019년 5월 20일, 강화도 접경지역 장병간담회를 가졌다.

2019년 6월 7일, 장도연의 롱터뷰에 출연하였다.

2019년 7월 15일,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과 유의동 바른미래당 의원이 국무위원 해임건의안[18]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두 보수 야당이 추경과 장관 해임건의안 본회의 처리를 연계하자 강력하게 반발, 장관 해임은 물론 국정조사 역시 완강히 거부했다.

2019년 7월 31일.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주최한 제61회 국방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국방정책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우리 국방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2019년 8월 1일, "우리를 위협하고 도발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당연히 '적'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라는 강경한 발언을 했다. #출처

2019년 8월 5일,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하였다.

2019년 8월 9일, 수많은 사건사고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각 대상에서 제외되어 유임되었다.

2019년 8월 11일, 북한이 외무성 국장 명의의 담화를 내고 "정경두 같은 웃기는 것을 내세워 체면이라도 좀 세워보려고 허튼 망발을 늘어놓는다면 기름으로 붙는 불을 꺼보려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 "미사일 사거리도 판정못해 쩔쩔맨다"라며 정경두 장관과 청와대를 조롱하였다. #

2019년 8월 21일, GSOMIA와 관련해 "지소미아의 전략적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발언했다가 불과 5일 뒤인 26일에는 "지소미아는 한·일 간 군사정보를 교류하는 측면에 있어서 효용 가치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 이에 대해 정경두 국방장관은 '지소미야를 통한 정보공유 각각의 건에 대해서는 효용가치가 낮을지 모르나, 지소미아를 통해 한미일 또는 한일간 군사협력적인 측면에서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취지의 발언들이었음을 밝혔다.

2019년 9월 9일, 여군창설일을 계기로 우수복무 여군 및 가족을 초청하여 격려하였다.

2019년 9월 30일, 국군의 날 71주년을 기념하여 국군장병응원을 위한 71초 챌린지에 참여하였다.

2020년 10월 21일, 국방부 국감에서는 함박도 논란이 계속됐다. 해병대 국감장에서 나온 이승도 해병 사령관의 함박도 초토화 발언에 의원들의 질의가 집중됐는데 이 사령관의 발언에 대해 결기를 보여줘 고맙다고 말했다.

2020년 4월 24일. "북한 공군기 비행이 이례적으로 증가했다"면서 "(북한이)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우리 군은 현 상황을 준 전시상황으로 인식한 가운데 군사대비태세와 연합방위태세를 굳건하게 유지하면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정부의 대응 노력에 가용한 모든 노력과 자원을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출처

2020년 4월 29일. 하극상 범죄가 늘어난 것에 대해 지휘관의 지휘권을 보장하면서, 장병들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출처

2020년 4월 29일 오전. 할지트 씽 싸젼 캐나다 국방부 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였으며, 캐나다 국방부 장관은 대한민국 국방부가 제공한 코로나 대응 경험 등에 대해서도 큰 도움이 됐다며 감사를 표했다.#출처

2020년 4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종합평가를 했고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에서 다 확인 과정을 거쳤다”며 “갖고 있는 정보상으로 특이동향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출처 이후, 5월 1일에 김정은이 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2020년 5월 2일 오전. 강원도 고성산불 현장의 부대장으로부터 산불 진화 및 장병들의 대피상황에 대해 보고받았으며, 현장에서 밤새 노력하여 장병들이 아무런 피해 없이 대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잘해준 데 대해 격려했다. 또한 헬기 진화 간 강풍, 돌풍 등에 유의해 안전하게 산불 진화작업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파이낸셜뉴스

2020년 6월 18일,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해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끝내 감행한다면 우리 군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강력하게 대응할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국민일보

2020년 8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국방장관 후보자에 서욱 육군참모총장을 지명하면서 큰 이변이 없는 한 9월 중 국방장관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

2020년 9월 18일 오전 10시30분 육군참모총장 전역식과 오후 1시30분 국방부장관 이-취임식을 끝으로 국방부장관으로서의 공식 임기를 마쳤다.

장관 퇴임이후에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자문위원과 아주대학교 국방디지털융합학과 교수로 활동할 예정이다.

3. 논란

2018년 9월 임기를 시작한 이래, 1년도 안 되어서 사과를 10번이나 했다. 국방장관이 북한의 명백한 도발에도 별 문제삼지 않거나 안보에 대해 안이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합참의장 시절까지만 해도 큰 논란이 없었던 반면에, 대부분의 논란이 장관 취임 이후에 생긴 것이다.

다만, 이러한 비판을 받은 뒤에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력 대응한다고 경고하는 등 논란이 될만한 발언을 자제하고 전보다 강경한 발언이 늘어났다.KBS, 파이낸셜 뉴스

3.1. 논문 표절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쓴 석사 학위 논문이 전체의 3분의 2이상을 다른 논문을 베껴쓰는 등 표절한 의혹이 KBS 취재 결과 드러났다.

정경두 장관 후보자는 지난 2002년 2월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하며 <항공기산업 현황과 발전 방향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48쪽짜리 논문을 집필해 논문 심사를 통과했는데 논문 9쪽에서 32쪽까지 모두 25쪽이 1999년 세종대학교 항공산업연구소가 발행한 박모 박사의 <한국 항공산업의 발전방향 Ⅱ>와 토씨하나 다르지 않고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정 후보자는 논문 서론과 결론 가운데 8쪽 분량을 세종대학교 항공산업연구소의 2001년 발행 논문인 이모 씨의 <공군의 발전방향과 항공산업육성>에서 베껴 쓰면서 논문 48쪽 가운데 33쪽을 다른 사람의 논문을 그대로 복사해 집필한 셈이다.

논문표절 의혹에 대해 정경두 장관 후보자는 "보도에서 언급한 2002년 석사학위 논문 작성 시 논문을 인용한 것은 사실"이라며 "학위 논문작성 시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정확한 인용근거를 명시하지 못한 것은 불찰"이라고 해명했다.

3.2. 위장전입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목동아파트에 위장 전입했던 사실이 채널A 취재 결과 드러났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999년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19]를 주거지로 신고했지만 충남 계룡시 공군본부에 근무하며 관사에서 거주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실제로는 정 후보자의 처형이 이 아파트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2000년 처형이 이사하자 정 후보자도 함께 주소를 옮기면서 두 번의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됐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위장 전입 의혹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정 후보자는 5일 국방부를 통해 "1998년 연말부터 계룡대 공군본부에서 근무하면서 1999년 2월과 2000년 6월, 주소를 서울 소재 아파트에 둔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군인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근무지를 자주 옮겨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 지역에 자가를 마련하고자 주소를 서울 인척 집에 둔 적이 있다"며 "공직자로서 사려 깊지 못했다"고 입장을 전했다.

결국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논문표절·위장전입 논란에 시인하며 "불찰이다", "사려 깊지 못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도덕성 측면에서 이미 정후보자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야권의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이며 인사청문회에서도 집중적으로 추궁할 듯하다...고 생각했건만 다른 장관들에게 시선이 쏠리면서 유야무야 되어버렸고, 청문회 서류 채택이 하루 밀린 정도가 유일한 타격이었다.

3.3. 천안함 및 연평도 발언

KBS 신년기획 '한반도의 미래를 묻다'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 답방할 경우 천안함 피격 사건연평도 포격전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 "우리가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비핵화가) 잘 될 수 있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일부 우리가 이해를 하면서 미래를 위해서 나가야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의 군사도발을 용서해주자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천안함 유족들은 이러려고 목숨을 바쳤나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또한 문재인 정부 인사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도 늘고 있으며 보수층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 가지고 일본에 꾸준히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규탄하는 여론을 조성하면서 10년도 안 된 천안함연평도는 사과 안 해도 좋으니 평화를 위해 묻어가자는 소리를 하고 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국방부는 "남북관계 신뢰 구축을 위한 여건 조성 차원에서 한 발언"이라고 말하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은 명백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북한이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해명했다.

2019년 3월 20일에는 서해 수호의 날에 대해 '서해상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남북 간 충돌을 추모하는 날'이라는 발언을 했다가 백승주 의원의 북한의 도발이냐 충돌이냐 라는 추궁에 북한의 도발로 인한 충돌이라고 정정했다.


또한 천안함 추모식 관련해 유족들의 의견을 왜곡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3.4. 허술한 해상 경계 및 사실관계 은폐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019년 6월 15일, 북한 어선이 130km를 남하해 강원도 삼척시 삼척항까지 내려와서 정박했다. 그런데도 주민 신고 전까지 군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뚫린 군의 해상 경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 # 특히 군 당국이 해상 경계망을 허술하게 관리한 데다, 거짓말에 가까운 해명을 하는 등 정확한 사실관계까지 은폐하려 한 정황이 있어서 더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사건 및 제2함대 허위자백 사건으로 인해 2019년 7월 15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이 정경두 해임건의안을 공동으로 제출했다.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과 유의동 바른미래당 의원이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3.5. 국방위에서의 발언 뜸들이기 논란

"6·25, 김일성이 벌인 전쟁인가" 이 질문에 답변 주저한 정경두

국회 국방위에서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이 파주시 적군묘지[20]에 대해 정경두에게 질의했으나 한참 뜸을 들이고 답변을 해 논란을 빚었다. 특히 적군 묘지가 적군의 묘지가 맞냐는 기초적인 질문에 빠르게 답한 이전 질문과 달리 4초간 뜸을 들였다. 또한 6.25 전쟁에 대해 김일성김원봉이 책임이 있냐는 백승주 의원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반면, 목선 관련 내용의 언론 유출은 적극적으로 막겠다고 즉각 대답하는 등의 다른 모습을 보여 역시 논란이 되었다.

3.6.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관련

제20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해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이 사실을 알고 있냐'는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 질의에 "언론을 통해 확인했다"고 답했다. 이를 둘러싸고 탈북 선원 강제 북송이 지휘체계를 거치지 않고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문서를 참조.

4. 주요 이력

4.1. 학력

4.2. 약력

5. 여담

5.1. 역대급 운장

일선에서 덕장이자 지장으로서 평가가 높았으나, 복무 말년에는 무엇보다도 어마어마한 운장의 위용을 과시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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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사 학위 논문: 항공기산업 현황과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 (2002. 02.)[2]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군을 대표하여 기도한 적도 있다. 한국기독군인회(KMCF) 회장을 겸임하고 있었다가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에게 넘겼다.[3] 원래는 2019년 퇴임이지만 장관 임명을 위해 강제전역 되었다. 사유는 사람이 없어서라고....노태우 역시 4성을 단 후에 전두환이 정치 경험치를 먹이기 위해 강제 전역되었는데 이와 비슷하다.[4] 이양호 전 합참의장(1993∼1994년 재임) 이후 23년 만에 나온 공군 출신 두 번째 합참의장이다.[5] 국방부 장관의 임기가 딱히 정해진건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18~24개월 정도니 2년이면 그럭저럭 임기를 채웠다고 볼 수 있다. 김관진과 한민구처럼 3년 이상 맡는 경우는 특이한 경우.[6] 공자대의 보수교육기관이다. 공자대 장교 양성교육기관인 간부후보생학교와는 다르다.[7] 일본어로는 지휘막료과정(Command and General Staff Course)이라 하며 대위-소령 정도의 영관급 장교가 받는 교육이다. 한국에서도 합동군사대학 휘하의 공군대학에서 같은 교육을 한다.[8] Air War Course. 간부고급과정을 말한다. 고급지휘관을 위한 교육이다.[9] 전 총장 최차규는 후임 작전사령관이었던 29기 김정식 장군을 밀었다고 전해지나 실패했다. 일선 장병들도 김정식 장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걱정을 했는데, 왜냐하면 김 장군은 하급자들을 험하게 굴리기로 악명이 자자했던 지휘관이었기 때문이다.[10] 동기나 후배가 참모총장이 되면 전역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30기 동기였던 강구영 중장을 남겼다.[11] 덕장으로도 알려져 있고 진급 적체 해소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12] 간부 선에서는 전임 참모총장인 최차규 장군을 까면서 비교 내지 반대급부로 칭송을 받는 경우가 많고, 그게 아니더라도 조직 내에서 "참모총장님은 좋은 분, 덕장이다" 라는 말이 임기 중 유달리 많이 돌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간부들은 물론이고 그를 겪은 일반 병들에게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13] 다만, 인민군은 어디까지나 '당'군이기 때문에 당직이 더 높은 리명수 참모총장이 박영식 인민무력상보다 군 내에서 지위와 발언권이 더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14] 비육군 출신 합동참모의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간 사례는 이양호에 이어 두번째다.[15] 전임 보직의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차이점은 정경두 장군의 경우 국방장관을 시키기 위해 군에서 반강제로 전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전임 송영무 장관이 여기저기서 사고치고 다니는 등 상황이 상황인지라...[16] 만약에 정경두 장관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되고 나서 직접 미국 국방부 담당자들과 만나 사업 낙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면 KAI의 본사 겸 공장이 있는 하동-사천-남해나 진주 지역의 국회의원 출마도 무리는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T-X 프로그램이 보잉-사브 컨소시엄에 넘어가면서 물거품이 됐다. 다만, 이번 수요는 공군만의 수요이기 때문에 향후 보잉-사브에서 납품하는 기체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 미군 전체의 수요물량 중 남은 650대와 다른 지역에 대한 판매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17] 내부 소식에 따르면 정 장관과 수행인원들은 이날 하루만 세 번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고 한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정복 입고 이임/전역식,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다과회, 양복으로 환복하고 취임식 및 인수인계를 했다고. 정 장관은 설령 진짜 양복이 없었더라도 입던 양복을 버렸거나,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 예로 축구선수 정성룡이 국가대표 소집 때 세탁소에 맡긴 양복이 세탁소 사정으로 늦게 나와 곤욕을 치른 바 있다.그나마 이 쪽은 겨울양복이라도 있었지만 소집이 7월이라 한여름에 겨울양복을 입어야 했다. 애초에 구매를 한 적이 없다면 여태까지 참여한 모든 결혼식 및 장례식을 정복을 입고 방문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본인 직계가족 관련 행사에 그렇게 입고 나올 수는 있지만 단순 지인 결혼식 등에 그렇게 입고 가는 것은 민폐이다. 그 주 초에 급하게 하나 새로 맞춰야 했다고 한다.[18] 말 그대로 '건의'안이므로 대통령이 반드시 해임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정권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고 국정 주도권이 야당에게 넘어가는 효과가 있었다. 국민의 정부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안을 계기로 DJP 연합이 무너진 적 있었고, 박근혜 정부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 거부로 박근혜의 불통 이미지가 강화된 적 있다. #[19] 뉴스에선 잘 나오지 않으나 아파트 특유의 색감으로 볼 때 목동신시가지아파트 7단지로 추정된다.[20] 빨치산과 남파 무장공비를 묻은 곳이다.[21] 지금은 공사 졸업하거나 학사장교로 임관 시 조종경력은 0시간이며, 공군사관학교 예하 제212비행교육대대에서 T-103 초등훈련기를 이용해서 11주간의 초등비행과정을 이수한 뒤 3훈비에서 35주간의 중등비행교육과정을 거쳐 1전비에서 고등비행교육을 받게 된다. 학교에서 조종교육을 받은 ROTC 출신만 이곳으로 바로 배속되어 중등비행과정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지금 조종장교로 임관한다면 중위 끝물이나 대위가 되어서야 빨간 마후라 받고 정식 조종장교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22] 미국은 대장 보직이 40개에 이르고 기술통 출신 등은 해군핵추진프로그램 등의 자리 때문에 50대 초반에 대장을 달아버린 케이스가 많다.[23] 중국은 70-80대 군원로들이 근래까지 활동했던 탓에 젊은 군대를 만들려고 많이 깎은 게 60대 상장들이다. 2015년 9월 기준으로 1955년생 상장(남경군구 정치위원인 쩡웨이핑(郑卫平)과 해군 정치위원인 마오화(苗华) 2명)이 제일 젊다.[24] 자위대는 대장 보직이 4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사적체가 심각한 편이다. 장관급 간부의 경우 방위대학교의 기수에 철저히 맞추는 편이다.[25] 중국의 경우에는 엄밀히는 상장을 기준. 대장은 1955년 이후에 보임된 적이 없으므로.[26] 물론 2~3기수, 3~4기수마다 한 번씩은 해당직위를 맡지 못하는 기수가 나온다. 그래야 그나마 1년마다 고위직이 교체되는 사태는 피한다.[27] 모 나라에 국방무관으로 파견된 육군 대령에 따르면, 타국 대령들은 40대 초반인데 반해 유독 국군의 대령들은 50대를 넘어서는 고령이라는 것.[28] 현재 군사안보지원사령부.[29] 군대도 마찬가지로, 학벌주의라서... 같은 능력이라면, 좀 더 유능한 쪽으로 대졸을 뽑지, 고졸을 뽑진 않는다.특히 자대를 직접 선택하는 공군이 아닌 이상 사령부가 대졸선호 현상이 더 심한 편이다.[30] 군대에서도 친척에 고위급 군 간부가 있다면 군생활이 편해진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군대 가기 전에 사돈의 팔촌까지 고위급 간부들을 이잡듯이 찾는 경우가 이런 경우다. 정경두의 아들이 공군 입대를 거절 한 것은 이러한 면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같은 직군 장성이라면, 식겁해서 터치도 못 한다는 얘기는 많기 때문에 군생활 못 하게 하려고 일부러 타 직군으로 보낸 거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타 직군이라면, 힘을 쓸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31] 공사 28기로 공본 인사참모부장, 제16전투비행단장 등을 역임했다.[32] 김관진도 비슷한 평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군인 시절에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좌우 관계없이 높이 평가받던 사람이었지만 국방장관 및 안보실장을 거치면서 평가가 떨어졌고, 결국엔 정치 성향까지 겹쳐져 극과 극으로 갈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구속 수감된 것을 보고, 제복군인으로 남았으면 그냥 명장으로 남았을 것이라며 매우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반북좌파 성향의 사람에게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33] 사실 장성급이면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고 자식들도 죄다 커서 나갈 돈도 별로 없다. 이곳저곳 돈을 많이 썼거나 군무원 임용으로 군 생활을 간접적으로 이어나가려 했던 거 같은데 결국에는 군무원 차수장인 국방부장관이 됨으로써 의미 없게 되었다. 다만 본인 뿐 아니라 장성이 되었을지라도 군인의 은퇴 시기는 일반 공무원보다 빠른편이다. 물론 그래서 군인연금은 액수도 많고 더 빨리 주기도 하지만 돈을 떠나서 그 나이대에 일하는 사회인들이 많다. 당장 장성이나 대령출신 안보 강사가 많은 것도 그를 뒷받침해주는 하나의 계기이기도 하다.[34] 진짜로 본인의 중장과 대장 계급장을 쓰레기통에 버려서 병사들이 직접 파쇄한 일이 있다는 말이 있다.[35] 참모총장을 역임한 장군들 중 교육사령관이나 사관학교장을 역임한 뒤 참모총장이 된 사람들은 흔하지만, 이 역시 참모차장을 요직으로 본다. 중장 1차 보직 중 교육사령관과 사관학교장은 약간 중요도가 떨어져 이도저도 아닌 평범한 보직으로 보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