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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16:35:01

일소 불가침조약

소련-일본 중립 조약에서 넘어옴

1. 개요2. 조약을 체결한 배경
2.1. 일본2.2. 소련
3. 조약을 체결하다4. 조약 체결 이후
4.1. 나치 독일의 압박과 관동군의 움직임
5. 조약 파기6. 평가

1. 개요

일소불가침조약(日ソ中立条約, Советско-японский пакт о нейтралитете)은 1941년 4월 13일, 일본 제국과 소련이 상호 중립을 유지하기로 맺은 조약이다. 조약의 정식 명칭은 ‘일본국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간의 중립에 관한 조약’이며, 유효 기간은 5년이었다.

2. 조약을 체결한 배경

소일 양국 모두가 전선을 단일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중립 조약이 체결되었다.

2.1. 일본

일본은 1939년 할힌골 전투에서 소련군에 참패함으로써, 대륙 내 북방 확장 정책(북진론)에 한계를 느끼고,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남방 진출(남진론)로 외교 및 군사 전략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일전쟁(1937~)으로 인해 중국과 전쟁 중이었고, 국제적으로는 추축국(독일·이탈리아)과의 방공협정으로 인해 고립 상태에 있었으며, 이 시점에서 미국, 영국을 대상으로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2.2. 소련

반면 소련 역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긴 했으나 독일을 경계할 필요가 있었고, 핀란드와 전쟁 중이었기에, 극동 지역에서의 일본과의 충돌을 회피할 필요성이 있었다.

3. 조약을 체결하다

1. 양국은 서로의 영토 보전과 중립을 존중한다

2. 상대국이 제3국과 전쟁을 벌이더라도, 자국은 중립을 유지한다.

3. 조약의 유효 기간은 5년이며, 자동 연장이 가능하다.
1941년 4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조약이 체결되었다. 양국의 외무장관인 마쓰오카 요스케(일본)와 몰로토프(소련)가 서명했다.

4. 조약 체결 이후

조약 체결 후 일본과 소련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직접적인 전쟁 없이 중립 상태를 유지했다.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며 미국 및 연합국과의 전면전에 돌입했고, 소련은 같은 해 6월 22일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로 인해 독소전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된다.

즉, 양국 모두 자신의 전선을 단일화하기 위해 중립 조약을 실질적으로도 준수한 것이다.

4.1. 나치 독일의 압박과 관동군의 움직임

한편, 나치 독일은 전쟁 중 일본에게 소련을 남쪽에서 공격해줄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관동군은 무력 시위를 벌이며 소련 침공을 검토한 적도 있었으나, 할힌골 전투의 트라우마와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전선 부담 때문에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5. 조약 파기

1945년 4월 5일, 소련은 조약 만료 1년 전 조약의 불연장을 통보함으로써 사실상 파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면상 조약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였고, 일본 역시 패전 직전까지 조약을 존중하며 소련과의 충돌을 피했다.

그러나 얄타 회담(1945년 2월)에서 소련의 대일 참전이 비밀리에 합의되었고, 결국 소련은 1945년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와 함께 만주, 한반도 북부, 남사할린, 쿠릴 열도 등지로 진격하면서 조약은 완전히 무력화된다.

6. 평가

일소중립조약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균형을 잠시나마 유지시킨 조약으로 평가되며, 양국 모두에게 전선 분산을 피할 수 있게 해준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국 소련은 전쟁 말기 일본과의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침공에 나섬으로써, 전후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중국의 공산화와 한반도 분단, 북방 영토 분쟁, 일본 패전 후 극동 질서 재편 등 다양한 국제 문제의 전조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