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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14:18:54

삼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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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colbgcolor=#28247c><colcolor=#ffffff> 삼양사
Samyang Corporation
파일:삼양사 로고(2024).svg파일:삼양사 로고 화이트(2024).svg
설립일 2011년 11월 3일[1]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업종명 설탕 제조업
매출액 2조 963억 8,700만 원(2019)
영업 이익 815억 6,400만 원(2019) #
순이익 528억 8,700만 원(2019) #
대표이사 강호성, 최낙현
상장 여부 상장 기업
기업 규모 준대기업
그룹 삼양그룹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 (2011년 ~ 현재)
편입 지수 코스피
KOSPI200
종목 코드 145990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33길 31(연지동)
링크 파일:삼양그룹 로고(2024).svg파일:삼양그룹 로고 화이트(2024).svg

1. 개요2. 역사3. 지배 구조4. 슬로건5. CI6. 역대 임원
6.1. 구 법인6.2. 신 법인
7. 사업 분야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전산 오류로 인한 채용 합격 번복 사태8.2. 친일 기업 논란8.3. 설탕 가격 담합
9.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SAMYANG.png
삼양홀딩스의 모태가 된 기업으로, 동아일보의 창간자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에 의해 설립되었다. 넓게 보면 동아일보 가문의 일원으로 동아일보,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경방과 더불어 모두 이 가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주사 삼양홀딩스의 자회사다.# 흔히 삼양식품과 혼동되는데 서로 뿌리부터 다른 완전히 별개의 기업이다.[2] 현재 전북은행(JB금융지주)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2. 역사

1924년 김성수의 동생 수당(秀堂) 김연수가 가문 소유 농장을 관리하기 위해 세운 '삼수사'가 모태다. 1931년 현 명칭으로 개칭하고 1934년 합자회사로 전환했으며, 1939년 만주에 남만방적을 세워 만주사업 확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1945년 8.15 해방 후 남북분단으로 만주에서 철수했고 1948년 전북 고창에 해리염전을 개발했으나 이듬해 김연수 사장이 친일 행적으로 반민특위에 구속되고 1950년 농지개혁법까지 시행되며 농장이 해체되었다.

6.25 이후 1955년 울산 제당공장을 세워 설탕 생산을 시작했고 1961년 서남수산, 1965년 삼양수산을 각각 합병해 수산가공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68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후 1969년 전북 전주에 폴리에스텔 공장을 세우고 1975년에는 전남 목포에 배합사료공장을 세워 동물사료를 처음 생산했다. 1977년에는 삼양모방을 합병했다. 1988년부터 부문별 대표이사제를 도입했다가 2000년에는 사업부를 'BU'로 조직개편하며 폴리에스텔 사업부를 떼내 SK케미칼과의 합작법인 '휴비스'를 세웠고, 2002년에는 식품 통합 브랜드 '큐원'을 런칭하고 2003년에는 베이커리 카페 'Cafe Mix&Bake'를 오픈했다가 2006년 외식부문을 '삼양푸드앤다이닝'으로 분사시켰다. 2011년 기존 법인이 '삼양홀딩스'로 출범하자 물적분할됐다.

2012년 사료사업 부문을 아이피드에 팔고 2013년 삼양EMS, 2014년 삼양웰푸드 및 삼양밀맥스, 2016년 삼양제넥스를 각각 합병했으며, 삼양홀딩스로부터 무역사업 부문을 이관받았다.

2024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3. 지배 구조

2023년 4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양홀딩스 61.8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수당재단 0.8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자사주 6.27%

4. 슬로건

5. CI

파일:삼양사 로고(1924).svg 파일:삼양사 로고(1941).svg 파일:삼양사 로고(1950).svg 파일:삼양사 로고 1984.svg
<rowcolor=#fff> 1924년 ~ 1941년 1941년 ~ 1950년 1950년 ~ 1984년 1984년 ~ 2004년
파일:삼양사 로고(2004).svg 파일:삼양사 로고.svg 파일:삼양사 로고(2024).svg
<rowcolor=#fff> 2004년 ~ 2016년 2016년 ~ 2024년 2024년 ~ 현재

6. 역대 임원

6.1. 구 법인

6.2. 신 법인

7. 사업 분야

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전산 오류로 인한 채용 합격 번복 사태

2017년 채용 과정에서 전산 오류로 합격자 250명 대신 불합격자 370명에 합격을 통보한 후 이를 번복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취업 카페 사용자들은 삼양 탈락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을 보고 두 시간 넘게 공포에 떨어야 했다.#

8.2. 친일 기업 논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친일반민족위')에 따르면 일본 제국에 국방 헌금을 납부하고 학병 권유 연설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더욱이 김연수 회장은 1941년 조선총독부의 자문 기관인 중추원 참의로 임명돼 해방 때까지 활동했다.

그는 중추원 회의에서 “일본정신의 체득, 황도정신의 삼투를 통해 정신적 방랑자인 반도 민중을 구제·재생시키자”는 취지의 참의답신서를 제출하기도 했으며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 만주국 명예총영사, 국민총력연맹 후생부장,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등의 ‘일제 직함’도 보유했다. 이 같은 사실이 널리 퍼지면서 삼양그룹은 광복 후에도 ‘친일 기업’ 이미지를 달고 있다. 김연수 회장은 1948년 시작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상황상 어쩔 수 없다”는 정상 참작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친일반민족위는 2009년 일제에 적극 동참했다는 이유로 김 창업주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했다. 김 회장의 후손들이 친일파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듬해 법원은 “김 창업주의 친일 행위가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정을 내렸다.

8.3. 설탕 가격 담합

공정위는 2007년 설탕 출고량과 가격을 담합, 부당이득을 올린 CJ와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업체를 적발했다. 조사결과 이들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15년여동안 설탕값을 담합해 왔다. 특히 내수 시장에서 CJ는 48.1%, 삼양사 32,4% 대한제당 19.5%로 나눠 총 6조원대 매출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공정위는 이들 3사에 과징금 511억3300만원을 부과하고 대한제당과 삼양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

2011년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삼양사와 대한제당에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삼양사와 대한제당은 각각 1억5000만원, 1억2000만원의 벌금형을 확정 받았다.#

9. 여담



[1] 현 법인 설립 연도 기준.[2] '삼양' 명칭은 삼양사가 먼저 썼다.[3] '염두하다'라는 말은 없다. '염두에 두며'라고 써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