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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5 14:30:59

방비 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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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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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건륭제의 후궁
방비 | 芳妃
생몰년도 <colbgcolor=#fff,#1f2023>1750년 9월 24일 ~ 1801년 8월 13일(52세)
시호 방비(芳妃)
지위 명(明)상재 ⇒ 명귀인 ⇒ 방(芳)빈
진씨
가계 부친 진연륜(陳延綸)
부군 건륭제
자녀 슬하 자녀 없음

1. 개요2. 초기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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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후궁이며 양주 인민 진정륜 (일설에선 진연륜)의 딸이다. 처음에는 한족 민인 출신으로, 후에는 양황기 포의 제1참령 제2관령하인으로 기적에 올랐다.

2. 초기 생애

건륭 15년 (1750년) 음력 9월 24일에 태어났다. 건륭 31년 11월 16일, 입궁하고 명상재로 봉해졌다. 건륭 40년 3월 22일, 명상재가 명귀인으로 진봉되었다. 건륭 41년 2월 24일, 궁 밖으로 외출하였고, 황태후가 해자에 등위하여 천자를 일으켜, 동행한 후비는 명상재가 있었고, 4월 28일에 명귀인으로 정식 책봉례를 치렀다.

건륭 41년 여름, 건륭제를 따라 열하를 순행하던 순비가 몸이 좋지 않자, 건륭제는 명귀인에게 순비를 모시고 피서산장에서 요양하도록 하였다. 10월 2일, 순비와 명귀인이 마차를 타고 귀경길에 올랐다. 순비가 탄 차는 「展放寬長」과 「安人護視」이었다. 궁으로 돌아온 후, 순비와 명귀인은 저수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해 10월 13일, 명귀인은 부하인 왕성에게 오빠를 찾아오라고 명했다. 명귀인은 왕성에게 건륭제에게 이 일을 보고하게 하고, 집에 사람을 보내 오빠를 볼 수 있도록 청했으나, 건륭제가 이를 엄하게 거절하였다.

건륭 44년 2월 1일, 태감에게 상녕전지를 내리면서 "양심전 순비의 거처는 돈빈에게 주고, 돈빈의 거처는 순비에게 주었다. 명상재는 순비의 차간에서 산다. 원명원 용비의 숙소는 돈빈에게, 돈빈의 숙소는 용비에게 주었다. 순비가 명상재를 데리고 항상 영수궁에 머물렀다." 라고 했다.

건륭 45년 9월 24일, 명귀인 진씨는 이미 귀인이 되어있었다.

건륭 59년 10월, 명귀인을 빈으로 진봉하는데 봉호를 "무(茂)·익(翼)·방(芳)" 세 글자 중, 방자를 선택해 방빈이 되었다. 10월 22일 내각에서 지시를 받고, 귀인 진씨가 방빈으로 진봉되었다. 11월 20일부터 방빈은 영화궁에서 살았고, 12월 29일 정식으로 책봉례를 했다.

가경 3년 4월 15일, 태상황 건륭제가 그녀를 방비로 진봉하고, 10월에 진봉례를 하였다.

가경 6년 8월 13일, 방비가 세상을 떠났고, 그 해 11월 27일 유릉비원침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