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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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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전반, 즉 한민족이나 대한민국/북한 국적자 등에 대한 차별은 anti-Korean sentiment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혐한'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인]에 대한 혐오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북한[인]에 대한 혐오는 anti-Korean sentiment에 속하지만 보통 '혐한'과는 별개로 본다. 또한 ethnic Korean (한민족) 뿐 아니라 비한민족 계열 대한민국/북한 국적자도 넓은 의미의 Korean에 포함된다. }}}}}}}}}

대안 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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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독일 베를린에서 유대인에 대한 초기 박해.[1]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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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1f2023>Antisemitism
한국어 반유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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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Antisemitismus
헝가리어 Antiszemitizmus
튀르키예어 Antisemit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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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어
Antisemitisme
히브리어 אנטישמיות
아랍어 معاداة السامية
에스페란토 Kontraŭjudismo[2]
Antisemitismo[3]

1. 정의2. 반유대주의의 역사
2.1. 고대 ~ 근세2.2. 근대 ~ 제2차 세계 대전 이전2.3.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의 반유대주의2.4. 제2차 세계 대전2.5. 현대
2.5.1. 유럽2.5.2. 미국2.5.3. 이슬람권2.5.4. 대한민국2.5.5. 인터넷
3. 해당 국가
3.1. 과거3.2. 현대
4. 주요 반유대주의 계열 인물들5. 신반유대주의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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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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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유대인에 대한 차별 및 증오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연합 산하의 인종차별제노포비아를 조사하는 유럽 모니터링 센터(EUMC)는 반유대주의를 다음과 같이 상세히 정의하고 있다. "특정한 인식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고 유대인 개인들과 그들의 재산, 또는 유대인 공동체 기관과 유대교 종교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가하며, 공격의 대상은 유대인 집합체로 여겨지는 이스라엘을 목표로 삼는 것도 포함된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들이 인류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비난하며, 또 그것은 사회의 부정적 일들에 대해 유대인들을 탓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2024년 미국 법률에 ‘반유대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규정한다는 내용의 반유대주의 인식법(Antisemitism Awareness Act)’이 찬성 320표 대 반대 91표로 통과됐다. 반유대주의의 정의와 관련해서 IHRA가 규정한 내용을 사실상 준용했는데 이 법에 따라 반유대주의에 대한 연방 정부의 정의에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가 인종차별이라고 표현하는 행위 ▷이스라엘이 이중잣대를 적용 받고 있다는 표현 ▷이스라엘/논란 및 사건 사고현대 이스라엘 국가 정책을 나치의 정책과 비교하는 행위 등이 반유대주의 행위로 규정될 수 있다. 이는 반이스라엘주의를 반유대주의에 포함시키는 법률이라고 볼 수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법안 지지자들은 현재 대학 캠퍼스에서 진행되는 시위 참가자들이 ‘인티파다(봉기)’를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는 것도 반유대주의로 규정하고 있으며 교육부가 그러한 견해를 표명하는 학생들에 대해 처벌 조치를 취하지 않는 대학에 연방 연구 보조금 및 기타 자금 지원을 취소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시민단체들은 법안이 규정한 반유대주의 행위에 대한 정의가 너무 광범위하고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정헌법 1조 옹호 단체인 ‘개인권리와 표현 재단(Foundation for Individual Rights and Expression)’의 타일러 카워드 수석 변호사는 “수정헌법 제 1조의 다른 어디에도 특정 국가를 특정 한도까지 비판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연방 차별 금지법을 위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수정헌법 제 1조는 개인이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를 비판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여기에는 가른 정부를 나치와 비교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부연했다. 유대인 출신의 민주당 제리 내들러 하원의원은 “이 법안은 헌법으로 보호되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길”이라며 “연방 정부의 조사를 피하고 싶은 대학들은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표현을 억압할 수 있다”며 동료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질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

현재까지도 반유대주의에 대한 정의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다. 대학교 반전 시위가 확산되자 아이비 리그코넬 대학교 총장, 하버드 대학교 총장,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총장이 반유대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자진 사퇴했다. 하버드 대학교 펜슬라 교수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반유대주의와 뒤섞여 하버드 공동체 내 분열을 키우고 있다"며 "무엇이 반유대주의고 무엇이 반유대주의가 아닌지 더 나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영어식 표현을 직역하면 '족에 대한 반감'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족 전체가 아닌 유대인 혹은 유대 민족에만 한정한다. 여기서 셈족 전체[4]로 확대하면 아랍인, 에티오피아인, 아시리아인, 몰타인까지 다 포함된다. 언어 관련 정보 참고.

2. 반유대주의의 역사

2.1. 고대 ~ 근세

빌라도가 "도대체 그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으나 사람들은 더 악을 써 가며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그 이상 더 말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기세가 보였으므로 물을 가져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군중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마태오의 복음서 27장 25절. (공동번역성서)

역사적 기원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기독교유럽에 확산되면서 유대인을 예수사도들을 박해하고 죽인 자들이라며[5] 증오한 것에서 기원을 찾고 있다. 물론 단순히 예수를 죽인 사람들이라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유대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예수의 십자가형을 선고하며 자신은 이 일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로마 행정관[6]에게 유대인들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라고 발언한 부분을 근거로 삼는다.[7] 하지만 역사가들 중엔 기독교가 뿌리내리기 전부터 반유대주의의 감정이 꽤 널리 퍼져있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다신교 문화권의 사람들은 다른 민족의 신들에 대해서도 크게 부정하지 않는다. 다리우스 1세아폴론에게도 참배했다거나, 알렉산드로스 3세아문 신의 아들이라는 신탁을 받고 널리 활용한 점이 그러하다. 그러나 일신교인 유대인들은 다른 신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우상이라며 증오했으니, 그리스인들에게 항상 미움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폼페이에서도 '여기는 소돔, 고모라같다'고 낙서를 해놓았다. 자신들을 천벌받아 뒈질 놈들 취급을 했으니 유대인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닐 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유대-로마 전쟁 당시 유대인의 편을 들어주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기독교화된 이후 오히려 유대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더 격화되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 정책을 되돌리고 고대 다신교를 부흥시키려 한 율리아누스 황제가 유대교 회당을 복원하자, 여기에 반발한 기독교인들이 몰래 유대교 회당을 방화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헬레니즘 시대고대 로마중세 시대의 유대인들은 북아프리카서아시아남유럽에 흩어져 살면서 다른 민족들과 어울리지 않고[8] 돈만 밝힌다는 편견과 미움을 샀다. 유대인들이 재산을 몰수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다보니 유대인들은 부동산에 기반한 농업보다는[9] 처분 후 이동이 가능한 현금, 유가증권 등 동산을 선호할 수 밖에 없었다.

만일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타 민족과 결혼금지와 같은 자기들만의 배타적인 전통을 유지하지 않고, 타 민족들과 섞여서 동화되었다면 반유대주의의 특수성 즉 인종적 편견과 타 종교에 대한 적대감이 결합된 형태의 혐오는 장기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일:Burning-Jews.jpg
어쨌든 유대인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정착해 사는 것이 어려워 안전 자산인 현금을 선호하는 관습이 생겼고, 그나마 허용되는 직업은 기독교 사회에서 이미지가 나쁜 돈을 만지는 일인 상업[10]을 대신하는 정도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세리, 마름같은 직업이 대표적인 유대인의 직업이었다.[11][12] 심지어 이들이 종사한 금융업은 제2, 제3 금융업이었으며 불법과 탈법의 경계에 선 고리대금업이었다.

당시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에서도 이자를 받는 대부업을 죄악시하였는데, 유대교는 유대인끼리의 이자 놀이만을 금지하고 타 민족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은 가능했기 때문에 종교 교리상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조폭이 사채업을 하는 이유는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인데, 당연히 제1금융업에 비해 떼먹히기 쉽고, 욕 먹고, 귀족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은 필수이고, 이 모든 것들이 높은 이자로 나타나게 된다. 애시당초 농업, 군직, 관직 등에 종사하는 건 금지했으면서 금융업은 풀어준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고리대금은 당시 유럽 기준으로 매우 영세한 규모였다. 유대인들에게 대부업을 합법화한 것은 1515년 교황 레오 10세의 피에타 법을 통해 연 5%까지만 허용되었기 때문에 그 규모가 클 수도 없고 중세 말에서 근세 사이 유럽에서 가장 금융업이 발달했던 지역은 엄연히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과 스페인 북서부 카탈루냐 지역으로 해당 지역의 은행들이 현대 금융업의 시초로 유대인들과 상관이 없다.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이 기독교인보다 더 너그러웠다고 한다. 기독교인이 사채업으로 배를 불린 이야기는 14세기 이탈리아의 작가인 보카치오가 저술한 책인 데카메론에서도 수시로 언급될 정도며,[13] 경제사학자들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우후죽순으로 설립된 은행들 중 하나인, 1408년에 설립된 산 줄리오 은행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로 보기도 한다. 물론 정설은 훨씬 뒤에 설립된 네덜란드 정부 산하의 공기업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역사상 최초의 주식회사라는 것이지만, 이런 주장이 나올 정도로 유럽기독교 신자들이 이끄는 금융업계가 고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유대인들이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은행은 단 한 곳도 없었고, 유럽 내에서 유대계 자본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은행은 중세도 끝난 18세기에 설립된 로스차일드 은행이었다.[14]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유대인을 사채업자로 비추는 반유대주의적 관념이 투영된 대표적인 캐릭터이다. 유대인들은 중세 시대부터 지정된 구역(게토)에 살며 게토 외 지역의 외출도 제한당했고, 유대인이라는 징표로 뾰족한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더불어 십자군들에게 학살당하기도 했고 흑사병 창궐 당시 유대인들이 독을 푼다는 소문이 돌아 학살당하기도 해서 교황이 직접 보호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 외에도 시대가 혼란스러울 때는 수많은 사적 린치가 빈번했다. 이게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그나마 약해졌지만, 그것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는데 예로 스페인의 국왕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펠리페 2세는 조상이 유대인일 경우 본인이 가톨릭 신자라 할 지라도 군인이나 고위 관료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린 바 있다.[15] 다만 폴란드는 유대인들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었고 그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이주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마르틴 루터도 반유대주의자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유대인들은 어린아이를 해한다는 음해(피의 중상)를 받기도 했다.

유럽 뿐 아니라 이슬람 국가들에도 반유대주의가 있었다. 버나드 루이스에 따르면 기독교권과 다르게 이슬람권 내 유대인들은 주로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차별의 양상이나 정도는 달랐다.

동아시아에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이나 차별 관련한 기록을 엿볼 수 있는데, 무슬림들의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일어난 황소의 난 당시 무슬림과 조로아스터교도 및 기독교인과 유대인 상인들이 황소 반란군에게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있기도 했다. 아프리카일본, 중원, 동남아에까지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살고 있는 걸 보면 여기서도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다만 황소의 난 당시 학살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경우 유대인 상인들만 골라 학살당한건 아니기 때문에 정황상 반유대주의로 인해 유대인을 학살한건 아니다. 당시에 동양에서 유대인들은 별반 인지도 있는 집단은 아니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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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활동한 유대인 철학자, 랍비이자 살라흐 앗 딘의 주치의였던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그나마 이슬람권 중에서 북아프리카나 서아시아에서는 종종 관리로 등용되었는데, 아글라브 왕조아이유브 왕조 시절에는 유대인들이 관료로 등용되었고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인 후우마이야 왕조도 대부분의 기간동안 유대인을 우대해 주었다. 애초에 이슬람 제국이 성공할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슬람 제국이 타종교에 관대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레콩키스타 이후 스페인은 종교적 순수성을 외치며 이베리아 반도 내 이슬람교도들과 유대인을 대거 추방하였는데, 이렇게 고향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북아프리카로 가서 바르바리 해적에 참가하기도 하였고 이 때까지 유대인에게 우호적이었던 스페인 제국의 라이벌인 오스만 제국으로 가기도 했다. 유대인을 받아준 황제 바예지트 2세는 유대인을 추방한 부부왕 페르난도 2세이사벨 1세를 보고 "자기네 나라를 가난뱅이로 만들고 우리나라를 부유하게 해주는 아주 현명한 군주"라고 비웃었다고 한다. 다만 스페인 제국이 몰락한 것이 스페인이 유대인들을 추방해서 그렇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유대인들을 추방한건 스페인 제국 이전의 일이었다.

'반유대주의'와 '반유대적 행위'를 구분해야 하며, 따라서 1800년까지 '반유대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맥스 I.디몬트[17]를 참조하기 바란다.

2.2. 근대 ~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나는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개인용 식탁을 부탁해 놓았었네. 그런데 오늘은 대령이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자고 어찌나 상냥하게 청하는지 그의 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었지. 이 순간부터 사건이 벌어졌네. 첫 마디에 내가 프라하에서 왔음이 드러났지. 장군(내 맞은편에 앉은)과 대령은 프라하를 알고 있더군. 체코인인가요? 하는 물음에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네. 선량한 눈을 한 이 두 독일 군인에게 내가 누군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누군가, 보헤미아 독일인이군요, 하고 말했네. 다른 사람이, 클라인자이테[18] 출신인가요? 하고 묻더군. 그리고 우린 아무 말 없이 식사를 계속했지. 그러나 장군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네. 식사가 끝나자 그는 내 독일어 발음에 대해 의심하는 듯했으며, 그보다 더 의심쩍은 눈으로 날 살피더군. 결국 나는 내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네. 과학적 관점에서라면 장군은 만족했겠지만 인간적으로는 그렇지 못했어... 인간적으론 나 역시 그다지 만족할 수 없었네. 왜 내가 그들에게 고통을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1920년 4월 10일자 편지 中. 카프카는 독어를 제1언어로 쓰는 체코계 유대인이었다.
나는 유대인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독일인을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니체

프랑스 혁명 후로 각국의 정부들은 유대인에게 공민권(군주국신민)과 시민권(공화국시민)을 부여하면서 가시적 차별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천여 년 넘게 이어진 반유대주의 감정이 그리 쉽게 사라질 리 없었다. 특히 산업화로 소외된 농민과 도시 빈민들은 유대인의 이미지를 자신을 착취하는 악덕 지주나 부르주아와 연결시켰다. 그리고 정치적 극우세력은 대중 사이의 만연한 반유대주의 감정을 적극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했기 때문에 사태는 더더욱 악화된다. 제정 러시아포그롬프랑스드레퓌스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또한 20세기는 반유대주의가 진영 가리지 않고 섞였다. 반유대주의에는 유럽대륙권 기독교 우파[19]가 상당히 밀접한 관계인데, 마침 러시아 혁명으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들어서자, 위기감을 가진 기독교 우파의 반공주의 성향이 더욱 강해지고 여기에 반유대주의가 결합(유대-볼셰비즘 음모론)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의 스탈린은 오히려 자국내의 반유대 감정을 조장하여 이용했다. 우연히도 공산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카를 마르크스[20]와 거물급 혁명가 레프 트로츠키, 블라디미르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고리 지비예프 등 다수가 유대인이라는 점도 확증편향을 부채질했고, '공산주의=유대인들의 국제적 음모'라는 프로파간다가 생기게 되었고 이후 아돌프 히틀러나치당은 주적인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을 한데 묶어 ‘유대볼셰비키’ 세력으로 규정하였으며, 사회적 문제를 유대인에게 오롯이 전가시키며, 이들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자신들의 통치에 유용하게 써먹었다.

2.3.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의 반유대주의

2.3.1. 에비앙 회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에비앙 회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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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독일의 유대인 난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프랑스 에비앙에서 회담이 열렸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끝났다. 이듬해 1939년에는 900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독일 세인트 루이스호를 타고 미국 마이애미 앞바다까지 갔다가 입국을 거부당해서 유럽으로 돌아왔다.

2.4. 제2차 세계 대전

파일:external/blog.sme.sk/holocaust-in-1945-buchenwald-concentration-camp.jpg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된 홀로코스트로 절정에 달했다. 폴란드를 시작으로 유럽의 대부분을 석권한 독일은 수백만에 달하는 유대인들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었다. 독일은 점령지에 남은 유대인들을 학살하거나, 게토로 몰아넣어 행동과 거주의 자유를 제한하고 식량과 의약품의 공급을 제한하여 천천히 죽어가게 만들었다. 당초 독일의 계획은 유대인들을 이렇게 자연적으로 죽어가게 만들면서 필요할 경우 노예 노동력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소련이 독일의 공세에 버티어 전쟁이 장기화되자(=유대인 "문제"의 신속한 해결이 불가능해지자) 1942년 초 반제 회의를 열어 유대인들을 절멸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그 이전까지는 아인자츠그루펜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거나 또는 현지인의 부역 또는 묵인 하에 유대인들을 게토로 몰아넣는 것이 주된 방법이었지만, 이후로는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트레블링카같은 절멸수용소에 몰아넣어 가스실에서 학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산업적 규모의 학살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선택된 곳이 바로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중앙부에 있었기 때문에 독일 점령지의 모든 유대인들을 끌고 오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에게 가장 먼저 점령당한 나라였으므로 이미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게토에 갇혀있었다. 따라서 독일은 절멸수용소 6개를 모두 폴란드 내에 설치했고, 여기서만 270만에 달하는 희생자들을 학살했다. 그들 절대다수는 유대인이었다.

서유럽과 북유럽, 남유럽의 유대인들은 그래도 대부분 살아남았지만[21], 동유럽은 독일과 그 동맹국, 그리고 부역자들의 협조로 문자 그대로 철저히 학살당했다.[22] 독일은 심지어 전쟁의 패색이 짙어진 1943년 이후로도 헝가리 왕국과 같은 괴뢰국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23] 1945년 5월 9일 패망하는 그날까지, 독일은 무려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물론 상술했듯이 독일만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독일이 점령한 지역의 거의 모든 민족과 독일의 거의 모든 동맹국(덴마크, 핀란드 제외)이 홀로코스트에 연루되었다. 비시 프랑스와 (살러시 페렌츠 체제 당시의) 헝가리, 크로아티아 독립국처럼 현지의 괴뢰국 정부기관이 아예 자발적으로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경우도 존재했고, 그런 정부기관이 없는 곳은 우크라이나(반데라주의류 민족주의자 등)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처럼 현지 부역자들로 구성된 학살부대가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자국 내의 유대인들은 대개 보호했지만, 점령지의 유대인들은 가차없이 학살하거나 추방했다.[24] 이탈리아는 유대인의 '절멸'보단 '지배'에 초점을 둔 반유대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1943년 아크세 작전으로 독일의 괴뢰국으로 전락한 뒤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지역에서 홀로코스트가 자행되었다. 폴란드인 중에는 유대인들을 도와 숨겨준 사례들도 있었지만,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동참한 경우도 있었다. 유대계 폴란드 역사학자인 시몬 다트네르는 당시 유대인 20만 명이 폴란드인에 살해되었다고 보았다.#

2.5. 현대

2.5.1. 유럽

파일:vsbericht-bw-1980_105.jpg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헌법수호청1980년 연례보고서 104p. 당시 바덴뷔르템베르크 헌수청은 무장친위대 상조협회(HIAG) 오스탈프(Ostalb)[25] 지부가 협회 잡지에서 유대인 집단학살을 두고 "대량학살 거짓말(Massenvernichtungslüge)", "(유대인이) 수백만이 죽었다는 것은 시오니스트들이 조작한 사기(von Zionisten ausgeheckten Millionenschwindel)"라고 주장한 것을 이유로 그들을 감시 대상에 올렸다.

문서에 첨부된 사진이 바로 문제의 그 잡지로, 독일의 연방수리 국장이 가운데 새겨진 육망성이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시온의 독수리는 시온주의 독재 하에 완전히 굴복한 독일연방공화국을 상징한다!(Der Zionsadler symbolisiert die totale Unterwerfung der Bundesrepublik unter die zionistische Diktatur!)"는 선동적인 반유대주의 문구가 쓰여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충격으로 얼마간 반유대주의 자체가 서구에서는 철저히 사장되고 금기시되었다.[26] 하지만 이내 다시 유대인들이 사회 각계에 진출하여 활약하자 반유대주의가 자라나기 시작했으며 게다가 종전과 달리 세계적으로 더 널리 퍼졌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쟁범죄 문제도 반유대주의를 자라나게 하였다. 2014년 8월에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인해 서유럽 등지에서 반유대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으며 반 이스라엘 시위, 유대인이 운영하는 상점 테러 등 실제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데 이는 비단 반 이스라엘에 그치지 않고 서구인들 마음 속에 뿌리깊게 새겨진 반유대주의의 표출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가 자국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진짜로 강경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훨씬 덜한 편이다.[27]

반이스라엘주의가 그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잠재되어 있던 전통적인 반유대주의 사상이나 네오나치, 이슬람 극단주의 등과 결합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딱히 이스라엘의 정책과 별 관계 없는 자국에 거주하는 토착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며, 여기에 편승한 음모론자들은 나치 시절의 철지나고 허무맹랑한 유대인 음모론을 다시 꺼내오기도 한다. 이로 인해 반이스라엘주의의 정당성이 약해지고 오히려 악성 시오니즘을 더 정당화시키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반 인권적인 행위를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강행하기만 하는 이스라엘의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나, 이스라엘 국내가 아닌 해외 각국의 토착 유대인들은 친 이스라엘 성향일 수는 있어도 이스라엘 국민은 아닐 것이고, 이스라엘 국적이 없다면 이스라엘의 정치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설령 이스라엘 국민이라고 해도 전부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니 이로 이스라엘의 활동을 이유로 이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민족 차별이다. 물론 해외 유대인들 중 이스라엘의 비인권적 행동을 옹호하고 그냥 비판도 반유대주의로 몰거나 때로는 팜플렛까지 돌리며 홍보하기까지 하는 골수 시오니즘 지지자들이 적지 않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든다 해서 프랑스, 영국 등의 나라에서 남들한테 아무 피해 안 끼치고 자기들끼리 잘 사는 유대인들에게 화풀이 하는 건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2015년 들어서 서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 때문에 이스라엘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이 늘어났다. 이스라엘 정부는 10년간 해외에서 취득한 모든 자산과 소득에 면세 혜택을 주고 별도의 예산까지 편성하면서 이주 유대인들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주 유대인들은 어디까지나 비싼 세금과 반유대주의 분위기를 피하려는 소수의 중산층과 부유층에 불과하다. 대다수인 서민과 하위층은 절대 떠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민족 차별과 폭력, 테러, 전쟁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국가임을 해외 유대인들이 모를 리가 없기에 이스라엘 이주는 해외 유대인들이 더욱 하지 않는다. 유럽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대인을 보호하며 그들에 대한 테러와 폭력을 막고 있다. 미국 역시 정부가 나서서 유대인을 보호하는 것은 마찬가지. 과거 유럽이 유대인을 박해하며 보호해주지 않았던 것과 차원이 다른 조치다. 특히 해외동포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부 때문에 자신들이 피해본다며 누구보다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외국 국민으로서 해외동포 유대인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아예 이스라엘과 아무 관련없다며 선을 긋기도 한다.

서유럽에는 이슬람인들도 많이 이민가 있는 만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반유대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등 서유럽 세속주의 뿐 아니라 유대인유대교에 대한 증오와 테러를 표출하고, 유대교 상점을 보호해주는 군인들에게 공격을 하는 등 반유대주의 만행을 저지르는 과격 무슬림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10대 소년들에 의해 유대인 묘비 300여기가 훼손되고 하켄크로이츠가 페인트로 그려지기도 했다. 서유럽의 기자가 유대인 모자(키파)를 쓰고 프랑스 거리를 10시간 동안 걸어봤더니, 자신을 "유대인~"하면서 비아냥대고 침을 뱉거나 라고 모욕하는 사람이 있질 않나, 어떤 무슬림 소년은 자기 엄마에게 "저 사람 저렇게 다니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요?"같은 말을 하는 등 반유대주의 정서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포착할 수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문단에서 후술.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도 현지에서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서유럽에서 만연한 반유대주의는 단순한 타인이나 특정 단체, 소속 인종에 의해 저질러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냥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고 언론 자유도가 크게 발전된 서유럽에서 인권 탄압, 민간인 학살의 만행들, 강경파 정치인들이 오랫동안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스라엘 중앙정부에 대한 반발감과 부정적 인식이 상당한 것도 크다.[28]

당연한게 이들 미국과 함께 유럽은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이 뿌리깊게 자리잡혀있는 국가들이다. 이들 입장에서 그 어떠한 핑계와 주장을 한들 개개인들의 권리, 인권이 억압당하고 짓눌리는 것에 대해서 반감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 반대로 일부 시오니스트들이 단순히 그런 행동을 비판했다고 반유대주의 몰이를 하는 통에 유대인 이미지를 나빠지게 하는 부작용도 있다. 심지어는 같은 유대인에게도 이스라엘을 반대했다고 반유대주의자라고 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반유대주의가 이슬라모포비아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반유대주의가 극좌진영[29]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제러미 코빈, 레베카 롱베일리 같은 급진좌파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종종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것이 구설수에 오른다. 레베카 롱베일리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당시 경찰이 모사드에게서 비밀 훈련을 받은 것이라는 근거 없는 혐오 발언을 하여 그림자 내각의 교육부장관직에서 경질되었으며, 제러미 코빈헤즈볼라 옹호 등 전방위로 이스라엘에 대한 반대 발언을 공공연히 하다가 2020년 10월 노동당에서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다.

다만 해당 판결을 비롯해 노동당 내 좌파진영의 소위 '반유대주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국가로서의 이스라엘과 그들이 행하는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정책 및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을 유대인이라는 인종에 대한 비난과 등치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코빈이 물러난 이후 들어선 키어 스타머 노동당 신임 대표는 당의 정책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코빈 체제의 색채를 의도적으로 빼는 중이며, 코빈 전 대표에 대한 당권정지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위 코빈의 사례에서처럼 이스라엘 정부와 친 이스라엘 정부 성향 유대인들은 양국 방안을 지지하며[30]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유럽 내 좌파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유대주의자라며 공격을 가하고 있는데, 이에 유럽 좌파들은 사회주의반제국주의적 입장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것이지 자신들이 반유대주의자거나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존재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논박하고 있다.[31]

그 외 교조적인 전통 가톨릭 또한 반유대적 성향을 보이며 2019년 반유대주의 시위가 절정에 달했다.

2.5.2. 미국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미국에서는 반유대주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정치적 올바름 등에 입각하여 미국 사회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십년간 반유대주의에 대해 매우 강경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도 유대인을 겨냥한 총격테러(피츠버그 총기난사 사건)와 반유대주의자들의 시위가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도 일어나는 등 반유대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의 집단 시위는 현재 미국에서 반유대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로서 미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대안 우파, 백인우월주의성향을 가진 시위대가 버지니아 샬러츠빌 폭동에서 "Jews will not replace us", "Blood and Soil"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이 대놓고 전파를 타고 방영되었을 정도. 특이한 점은 이 시위대가 지난 시위대와는 달리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반유대주의 성향을 가진 시민들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이한 점은 미국에서 중동인, 이슬람에 대한 배격과 거부감이 늘어남과 동시에 유대인에 대한 배격과 거부감 역시 늘어나는 것이다. 아랍, 이슬람을 싫어하고 이들과 대립하는 유대인을 좋아하는 식의 전통적인 대립구도가 아니라 이제는 둘 다 싫다는 것이다. 당장 버지니아 샬러츠빌 시위에 나선 시위대도 유대인을 'jews'라고 부를 정도로 싫어하지만 강경한 반이슬람 성향 역시 갖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극우 세력 뿐 아니라, 극좌 세력들의 과격 집단 시위도 반유대주의 논란을 빚기도 한다. 한 예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터지면서, 대학가와 도시에서 시위가 번졌는데 이들은 인티파다, 강에서 바다까지 등의 다양한 구호를 외쳤고, 많은 유대계들은 이를 "반유대주의"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시위대 측에서는 반유대주의와 반시오니즘을 구별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을 동정한다고 다 반유대주의자라고 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친팔레스타인 시위 내에서 유대인에 대한 적의감, 이스라엘'인' 자체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발언들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유대인 입장에서는 이에 대해 충분히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충격을 준 것은 대학 캠퍼스에서의 이런 시위와 관련해서 소위 미국 최고의 명문대에 속하는 하버드, 유펜, MIT 총장들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한 답변이었는데 유대인 학살을 외치는 것이 학내규정을 어기는 것이냐는 질문에 실제 행동에 옮겨지면 그렇다면서 확답을 피해가며, 노골적 반유대주의 헤이트스피치조차 괜찮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되었다. 특히 '이중잣대'에 기반한 반유대주의라는 논란은 피해갈 수 없었는데, 이러한 좌파 인텔리들이 정작 흑인이라던가 다른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한 정치적 올바름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당연하지만 유대인도 미국에서 엄연한 약자/소수자 집단인데도 유대인을 마치 사회적 강자/다수자 내지 기득권 집단처럼 취급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적용되지 않는 것은 차별적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이는 동양인이 흑인을 넘어 백인보다도 성공한 이들의 비율이 높다고 마치 약자/소수자가 아니고 기득권자 취급하는 반아시아 인종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장기화로 인해 반유대주의/반이스라엘 인종주의반팔레스타인 인종주의가 동시에 커지면서 유대계와 팔레스타인 시민들에 대한 위협과 괴롭힘이 증가해 이들이 공포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2.5.3. 이슬람권

"역사에서, 최근에는 히틀러유대인에 대한 알라의 형벌을 집행했다. 유대인들은 히틀러가 저지른 일부풀리지만,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받아 마땅한 일을 집행한 것이다."
UAE의 인기 높은 수니파 이맘 셰이크 유세프 알 카라다위[32]

오늘날 기준으로 반유대주의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이다. 이는 팔레스타인 문제, 성지 문제가 끼친 영향이 막대하다.

이슬람 교리가 이슬람권의 반유대주의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서로 이견이 분분한데, 버나드 루이스처럼 이슬람 교리 자체가 반유대주의와 별반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이븐 와라크처럼 이슬람 교리 자체부터가 강경 반유대주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해당 주장과 견해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는데, 현대 이슬람권의 반유대주의 운동이 이슬람주의적 해석을 바탕으로 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7세기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하였을 당시, 메디나는 토속 신앙을 믿던 아랍인들 이외에도 세 씨족으로 구성된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기대와 다르게 유대인들이 자기 편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자, 유대인 부족들을 하나씩 축출/학살하고 재산을 지지 세력들에게 나눠주었다.[33] 무함마드도 메디나 이주 초창기에는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이었다. 무함마드는 유대인이라면 자기 주장을 더 쉽게 받아들이리라 예상했던 듯,[34] 기도하는 방향을 예루살렘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대인 부족들은 무함마드의 종교적 주장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함마드가 "나를 도와 메카를 공격하자." 하는 말도 거부하였다. 이방민족인 유대인들이 어떤 아랍 부족을 적대하면 자칫 공적(公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35] 사실 이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고 유대인들은 본래 개종자들에게 엄격한 입장이었고, 이들 입장에서 무함마드는 좀 특이한 개종자 집단의 우두머리 정도였다.

624년, 무함마드는 메디나의 유대인 부족 중 하나이자 꾸라이쉬족과 계속 친교 관계를 유지하던 바누 카이누카(Banu Qaynuqa)를 축출하였으며, 쿠란 계시도 유대인들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기도의 방향도 메카로 바꾸었으며 유대인들을 '안식일을 어긴 자', '가르침을 위조한 자' 등으로 칭한다. 625년에는 우후드 전투에서 무슬림 군대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여기에 메디나에 남은 두 유대인 부족 중 하나인 바누 나디르가 이를 축하하며 기뻐하자, 무슬림들은 바누 나디르를 축출하고, 그들의 집과 재산을 지지세력에게 나눠주었다.[36] 627년에는 칸다끄 전투에서 무슬림들이 꾸라이쉬족에게 승리하였다. 그러자 무함마드는 칼 끝을 메디나에 남은 마지막 유대인 부족 바누 쿠라이자(Banu Qurayza)에 돌렸다. 무함마드는 바누 꾸라이자가 적대세력과 손을 합쳐 메디나에 들어올 길을 만들어주려고 했다는 명분으로 공격하였다. 무함마드의 지지자 한 명이 유대인 남자를 죽이자 무함마드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를 승인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바누 꾸라이자 남자가 전부 살해당하고[37] 여자와 아이는 노예가 되었다.
심판의 날은 무슬림이 유대인들과 싸우기 전까지 오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바위와 나무 뒤에 숨게 될 것이며, 바위와 나무들은 "야 무슬람들아, 야 하나님의 종복아, 내 뒤에 유대인이 숨어 있다. 어서 와 그를 죽이라' 노래할 것이다. 유대인의 나무인 구기자나무만이 그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심판의 날과 유대인 관련한 하디스 중 가장 대표적인 하디스 가운데 하나이다.

현대의 이슬람 극단주의는 반유대주의와 관련이 매우 깊다. 심지어 나치즘하고도 연관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무렵에 아돌프 히틀러나치대영제국프랑스같은 식민지 대국들인 서양 열강들에 대항할 목적, 그리고 시오니즘에 대한 반발을 이용하여 아랍 국가들과 유색인종 국가들에 접근하였다. 아랍 정치인들과 나치는 빠르게 접근, 교류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아랍의 이슬람 이맘, 율법학자들과 정치인들이 나치즘에 영향을 받았다.

사실 이 무렵 나치에 매료된 인물은 세계각국에 적지 않았으며 전후에도 나치즘의 영향은 상당했다. 아랍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운 바트당이나 나세르주의 역시 조직 측면에서 나치와 유사했다. 나의 투쟁이 '"나의 지하드"'라는 제목으로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아랍 세계에서 널리 읽혀졌다. "하늘에는 알라, 지상에는 히틀러가 다스린다."는 포스터가 시장에 나돌기도 하였다. 참고 이슬람 극단주의의 문제는 자신들의 뿌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주요 인물의 나치 부역으로 인하여 나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슬림 형제단의 창립자 하산 알 반나는 공개적으로 반유대주의 / 반시오니즘 사상을 받아들이고 나치와 협력할 뜻을 밝혔다. 아민 알 후세이니처럼 나치 독일와 손잡은 이들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치의 반유대주의 / 반시오니즘은 아랍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내부로 광범위하게 침투하였다. 참조

이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유대인음모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주의가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유를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억압받는 것에 대한 반격'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의 적대 활동은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많다. 실제로 서구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 증오범죄나 테러의 상당수가 이슬람 과격 신자들의 소행이며, 일각에서는 서구의 극우파보다 이슬람 이민자들의 반유대주의가 더 심각함을 우려할 지경이다. 이들은 유대인 음모론을 받아들인 탓에 진지하게 유대인이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고 믿고 유대인을 적대시한다.

실제로 이슬람주의자들이 유대인 관련 음모론을 주장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슬람 세력 역시 미국 극우세력과 마찬가지로 반지성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나치슬람(Nazislam)이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 일부 정치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슬람 자체가 본질적으로 반유대주의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비약이다. 당장 저런 신학적 차원에서 원론적 반유대주의는 기독교 세계에서도 넓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무엇보다 단순한 이론을 넘어 역사적 행적의 차원에서 보면 그쪽이라 해서 주기적인 반유대주의적 폭동 같은 게 없었던 건 아니지만 중세와 유럽의 굵직한 반유대주의적 탄압, 유대인 추방이 수백년간 벌어질 동안 이슬람 세계권에서는 전반적으로 딤미 제도와 차후 오스만 제국이 완성한 밀레트 제도를 통해 공존은 물론, 동시대 유럽에선 꿈도 꿀 수 없었던 광범위한 유대인들의 자치와 민권이 보장 되었다. 근세 스페인이 레콘키스타의 완수랍시고 수백년간 이베리아반도에서 멀쩡히 살던 유대인들을 싸그리 강제 개종 아님 추방할 동안 오스만 제국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주어 제국의 제2 도시인 테살로니키만 하더라도 16세기 후반쯤 되면 인구의 40%가 추방당한 세파르딤 유대인 후손일 만큼 중세-근세를 두고 보면 이슬람권은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반유대주의가 기독교 세계보다 확실하게 덜했다. 기독교 세계와 큰 틀은 비슷하게 신학적, 종교적 텍스트에서 기원한 민간 반유대주의적 의식이야 항상 있어왔지만 그게 현대의 병적인 형태로 폭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20세기이후의 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 문제로 인해 이에 따른 시오니즘과 아랍민족주의,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이슬람 극단주의의 충돌이 맞다.

2.5.4. 대한민국

근현대 이전까지 한반도유대인이 이주하거나, 한국인유대인과 접촉한 사례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한국과 유대인 사이에 큰 갈등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한국이 유대인과의 악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프로이센의 유대인 상인 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가 오페르트 도굴 사건을 일으킨 적은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 금융자본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계기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는데, 유대계 금융 거물 제이콥 쉬프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직접적으로 조선 병탄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 제국은 전비 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했지만 동양국가인 일본을 깔보던 서구에서는 당연히 일본제국이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어느 누구도 일본 국채를 매입하려 하지 않았는데, 그때문에 전비 고갈로 패배의 위기에 직면해 있던 일본제국을 구원한 것이 바로 당시 거물 유대인 금융가였던 제이콥 쉬프로, 쉬프는 포그롬으로 유대인을 탄압하여 유대인의 적이었던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러시아와 전쟁하고 있던 일본의 국채를 매입했다. 이때 쉬프는 "러시아 제국에 대항해서 일어난 대일본제국하나님의 지팡이였다!"라고 말하며 일본 제국을 찬양했다. 쉬프가 일본 국채를 매입하고 다른 유대인 금융가들에게도 일본 국채를 매입하도록 주선하여 일본의 전비를 조달해준 덕택에 유대인 자본의 도움으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병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쟁세력인 러시아를 물리치고 마음놓고 조선을 합병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구한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이른바 '유대인 금융자본'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반유대주의 음모론 신봉자들은 유대인 금융자본 음모론을 설명할때 로스차일드와 함께 제이콥 쉬프를 한번씩은 언급한다.

이런 악연이 있기는 했으나 현대 이후로는 대한민국이스라엘외교상 오랫동안 우호 관계를 맺어왔고, 반유대주의는커녕 권위주의 독재 정권 때 교련 수업에서 유대인들을 찬양한 사례가 있는 등 군사정권 시절에는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인 시각이 강했다. 과거 군대에서는 작지만 강한 국가, 안보가 튼튼한 이스라엘을 배우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는 국가로 포장했다.[38][39]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유대인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이 많이 줄고 이스라엘에 외부로부터 격리하여 수백만 명이 인도적 위기에 처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잔학행위가 벌어지는 등의 팔레스타인 문제,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유대세력에 대한 음모론 등을 바탕으로 인터넷에서의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유대인의 자녀교육 방식이나 뛰어난 금융지식 등 한국의 국민들 대다수는 유대인에 대해서는 나쁘게 보지 않으며, 긴 고난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킨 강인하고 현명한 민족이라고 평가한다. 반대로 유대인들도 한국에 대해서는 나쁘지 않게 보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유대자본이 미국에서 재계, 금융계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다는 식의 표현을 쓰며 기사를 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애초에 사실이 아니며 유대인 배후자본설을 정당화하는 논지이기 때문에 엄연히 반유대주의이다.

또한 현실적인 외교 면에서도 대한민국이스라엘과 어느 정도 이상의 우호 관계를 맺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이 우호 관계를 맺는 모습을 너무 노골적으로 대외에 나타낼 경우, 이스라엘과 기존 이슬람권 국가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이익을 얻던 한국의 외교 균형이 무너진다. 더불어 경제적으로 15억 이상이 넘는 이슬람권과의 무역 문제로 인하여 한국에서도 깊이 나서지 못해서 이스라엘에 대해선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다. 이는 조금 복잡한 내용이므로 한국-이스라엘 관계 문서를 참고할 것.

2.5.5. 인터넷

네오나치 모임 같은 정치적 딥웹을 제외하고 본다는 전제 아래, 여러 계층이 몰려들 만한 대형 사이트 중 영어권 인터넷에서는 4chan, 그중에서도 /pol/이 반유대정서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그러다 보니 4chan 트롤링 페이소스의 정수인 Encyclopedia Dramatica의 경우 나치 드립과 더불어 많이 쓰이는 드립이 반유대주의 드립이다.

그리고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음모론도 반유대주의의 단골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십중팔구가 농담이지만 실제로 믿는 인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 2016년 이후 인터넷에도 대안 우파성향의 네티즌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유튜브의 나치 독일 관련 동영상[40]에는 항상 홀로코스트 피해자, 특히 유대인 비하 발언이 베댓으로 올라가있다. 나치관련 매체를 금지하는 일부 국가에선 나치가 나오는 동영상이나 밈을 시청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동영상에는 십중팔구 왜 차단당했냐는 댓글이 올라오고 그 답글로 'Jewtube'를 달며 빈정대기도 한다. 고의적인 관심 유발 트롤링일 수도 있지만, 이에 찬동하는 네티즌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결국 인터넷상의 반유대주의는 나치 옹호, 더 나아가선 네오 나치스러운 성향까지 나아가게 된 실태다. 기존 영미권 인터넷의 반유대주의 정서와 최근 급격히 대두된 대안 우파가 맞물려 탄생한 결과물이라 볼 수 있겠다.

인터넷에서 잘 쓰이는 반유대주의적 용어는 다음과 같다.

3. 해당 국가

여론만 적대적이고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경우는 별(☆)표. 여론은 불명이나 정치적으로는 적대적인 경우는 별(★)표.

여론이나 정치적으로나 반유대주의적이며, 그 중에서도 반유대주의 성향이 강하게 두드러지는 국가들은 볼드체 처리.

3.1. 과거

나치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에 싹다 묻혀서 부각이 잘 안되는데 사실 추축국 뿐 아니라 대부분의 당시 서구권국가들은 반유대주의 정서가 강했다. 미국에서 반유대주의가 완화된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참전 용사들의 증언이나, 미국이 성경에 나온 민족인 유대인을 구원한 강대국이라는 미국 애국주의 신화이다. 입학사정관제 문서 등에서 보듯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전에는 그나마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덜 했던 미국에서도 반유대주의적 차별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3.2. 현대

사실 현대의 항목은 인종적인 의미에서의 반유대주의와 국가적 의미에서의 반이스라엘 성향을 구분 안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하자.

4. 주요 반유대주의 계열 인물들

좌익 반유대주의(left-wing antisemitism) 또는 사회주의적 반유대주의(socialist antisemitism) 성향의 인물들은 △ 표시.

5. 신반유대주의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신반유대주의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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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6. 여담

"유대인이 세계를 금전적으로 움직이게 된 비결!", "유대인이 경제계를 쥐어잡게 된 이유" 라는 식의 유대인 자체를 성공한 자본가라든가 경제적으로 금융, 유통을 지배한다든가 라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도 유대인 배후자본설에서 나온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주류언론에서도 이러한 레토릭을 언급하고 있다. (예시 : 한겨레 월간조선, 동아) 게다가 미국 유대인들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 할 만큼 영향력이 엄청나게 크다는 과장된 주장들이 한국 주류 미디어에서 대놓고 보도되고 있다.(MBC)

유대인이 미국의 자본계를 주름잡는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미국에서 손에 꼽히는 자본가인 록펠러, 카네기, 빌 게이츠, 모건 등은 민족적으로 유대계가 아니며, 특히 록펠러는 반유대주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중동에서는 무슬림들과 유대인이 사실상 대립 관계이긴 하지만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는 그렇지만은 않다. 구미쪽에선 세속적인 무슬림들이나 과격 시오니스트가 아닌 유대인들의 경우엔 서로에게 딱히 적대감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슬람 진영과 유대 진영의 사이를 한 마디로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도 가끔씩 나세르 시절 아랍 민족주의, 정치적 이슬람주의적 여론에 립서비스 하는 과정에서 침략자 이스라엘을 무찌르고 팔레스타인 동포들을 해방시켜 알아크사 모스크를 다시 깨끗히 하자는 주장을 펼치지만, 실질적으로 이슬람 세계 각국의 지도층이나 주류는 암묵적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교류를 하게 된 지 오래이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알 수 있듯 애초에 중동권 및 인근 지방의 정치 체제가 기독교인 vs 이슬람교인이란 구도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같이 당장 이스라엘과 지정학적으로 딱 맞물려 있어 이스라엘 문제가 곧 자국의 문제가 되는 레반트 아랍 국가들은 강한 반유대주의 성향을 갖고 있으나, 멀리 떨어져 있는 무슬림 국가에선 이스라엘에 대한 감정은 무관심 내지는 '나쁜 국가' 정도의 인식이며, 개개인 단위로 보면 오히려 덩치도 작고 역사적으로 박해받은 민족이 강소국을 만들었다는 소위 이스라엘식 영웅담에 호의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특히 북미에 사는 무슬림들 중 많은 수는 사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아랍인이 아니라 파키스탄, 인도, 동남아 등 아랍권하곤 종교 빼곤 별 연고도 없는 사람들인데 일반적인 사회적 무지 때문에 자꾸 '아랍인' 낙인 찍혀 지겨워하는 무슬림들도 꽤 많고, 이들은 아랍인들과 스스로 구별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유대인에게 별 감정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기도 한다. 애초에 중동 현지 자체가 일차원적인 종파 의식만으로 뭉치기엔 정세 자체가 너무도 복잡하고 정신없어 이스라엘에 대한 의견도 다양할 수 밖에 없고, 중동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남의 나라 정치문제에 크게 몰두 안 하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7. 관련 문서


[1] Deutsche! Wehrt euch! Kauft nicht bei Juden! 뜻은 "독일인이여, 스스로를 지켜라! 유대인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하지 말자!"이다.[2] 에스페란토판 위키백과 표제어[3] 에스페란토판 위키백과에서 이 단어로 검색시 'Kontraŭjudismo' 문서로 넘어간다.[4] 아프리카아시아어족셈어파를 국어로 쓰는 모든 민족들[5] 예를 들어, 투석형으로 순교당한 사도행전스데반, 채찍질 당한(고린도후서 11:24) 바울이 있다.[6] 이 때 손을 씻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보기만 해도 알겠지만 이는 '자신은 이 악행과 무관함을 증명'하는 행동이다.[7] 물론 예수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은 반유대주의자들에게는 완전히 무시되었다.[8] 유대인 공동체의 전통 문화와 고유 종교를 최고로 여기고 그런 관습을 자랑했기 때문에 지중해 경제권에 속한 모든 지역에서 대우가 안 좋았다.[9] 유럽에서 유대인의 농업이 완전히 금지당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유럽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는 유대인 농민들에게 황무지를 개간시키고 대신 정교회 신도 농민들에 비해 훨씬 더 경미한 조세를 거두는 마을들이 많았는데, 이런 마을들 상당수가 슈테틀의 기원이 된다.[10] 전근대 사회에서 상인은 도둑, 사기꾼과 동일시될 정도로 이미지가 나빴다. 동아시아에서도 상인이라는 말 자체가 상(商)나라가 망한 후 유민들이 토지소유권을 빼앗기고 유랑하면서 물건을 매매한 것에 대한 멸칭에서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싼 물건을 비싸게 팔아먹는 부도덕한 직업이라는 평가를 받은 상업이 누명을 벗은 것은 근세의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의 발견 이후의 일이다.[11] 이 과정에서 다른 인종의 금융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뇌물과 같은 금융 분야의 모럴 해저드에도 연관하게 된다.[12] 반면 이슬람의 교리상 돈벌이를 종교적으로 금기하는 중동 지역의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보다는 주로 의료업에 종사하였으므로 이미지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13]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은행성전기사단도 은행업과 더불어, 사채꾼 노릇을 너무나도 악랄하게 한지라서, 열받은 교황령프랑스 왕실에 의해 14세기 초에 파문을 당하고 깔끔하게 토벌당했다. 가톨릭 교회의 지원 하에 세워진 기사단의 횡포가 일개 사채업자들을 쌈싸먹을 정도로, 폐단이 범국가적으로 심하게 발생한 것이다. 실상은 유대인 사채업자에 의한 횡포는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나 발생한 거고, 그나마도 후술할 내용처럼 기독교 신자들이 운영하는 은행들을 상대로는 게임이 안되는 데다, 자칫 자신들이 박해당할 빌미를 줄 위험때문에라도 대놓고 갑질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14] 그래서 '고리대금업자=유대인'이라는 편견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유대계 자본이 제도권 금융 시장에 진출할 방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사채업을 한 것이고, 당연히 이런 식으로는 기독교계 자본이 운영하는 제1금융권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15] 그런데 이는 스페인이 유독 강한 가톨릭 순혈주의가 나타난 국가인 것도 한몫을 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스페인은 지방색이 매우 강한 국가인데 당시에는 그 지방색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로 묶을 수 있는 요소는 가톨릭 뿐이었다.[16] 원나라 당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 및 무슬림들과 구분된 남모회회(蓝帽回回)라는 명칭으로 불렸다.[17] 2019, <책의 민족>, 466쪽부터. 교양인 출판.[18] 블타바 강 좌안의 프라하[19] 반대로 한국, 미국의 기독교 우파는 반대로 친시오니즘 성향이 있다. 태극기부대 시위에서 이스라엘 국기도 나왔던 건 한국/미국 보수 개신교의 친시오니즘 성향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20] 정작 마르크스 본인은 기독교로 개종한 집안에서 자랐고 유대교와 유대인 문화에 오히려 부정적이었다. "유대인 문제에 대해"에서 알아볼 수 있다.[21] 네덜란드와 그리스 같은 예외도 있다.[22] 여기서도 불가리아 왕국과 철위대 집권 쿠데타 이전 루마니아 왕국같은 예외는 있다. 그러나 루마니아 왕국은 자국 내의 유대인을 학살하진 않았지만, 대신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획득한 점령지의 유대인들은 철저히 쓸어버렸다. 독일군마저 경악했을 정도로. 애초에 루마니아는 1차대전 후에야 자국 유대인들에게 시민권을 발급했을 정도로 반유대주의적이긴 했다.[23] 당초 호르티 미클로시 치하의 헝가리는 자체적인 반유대주의 정책은 펼쳤어도 독일 식의 절멸 정책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독일이 마르가레테 작전으로 헝가리를 굴복시키고 화살십자당을 내세워 국민단결정부라는 괴뢰정권을 수립함에 따라 헝가리의 유대인들도 모조리 학살당했다. 이때 주변국에서 헝가리로 피난온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학살되었다.[24] 그나마 불가리아에서는 디미터르 페셰프의 노력, 불가리아 정교회의 압력 등으로 인해 반유대주의 광풍이 급속도로 진정되었다.[25]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슈투트가르트 현의 군이다.[26] 물론 이러한 추세는 서구 대중들 사이에선 현재진행형이다.[27] 예를 들어 이스라엘 외교관(대사, 공사, 영사)이 사건이 발생한 나라의 중앙부처와 공안기관에 방문하여 격렬하게 항의하고 반대로 이스라엘 대통령이 상대국의 대사나 공사, 영사를 초치해 강경한 입장을 전하거나, 이스라엘 경찰관, 시설경비 보안관, 모사드 요원들을 해외 각국의 외교공관에 파견해서 자국 교민들이 이용하는 유대교 회당, 교민 복지회관 이런 곳들을 무장경비하고, 수틀리면 파견한 모사드 요원들이 블랙 옵스를 진행하거나 소형 UAV를 날려서 반유대주의 사건 주동자를 끔살하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다 쓴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1940년대의 후반기부터 1950년대의 전반기까지 이슈브와 이스라엘 중앙정부 및 관변단체들과 해외동포 민권단체들이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에 로비해서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주권이양 관련각서에 반유대주의 행동의 무자비한 처벌과 유대인 대학살에 대하여 손해배상손실보상 등등의 강제이행을 규정한 조항들을 집어넣었고, 이스라엘과 미국과 영국 및 프랑스와 체코의 공수동맹은 반유대주의를 때려잡는 매우 강력한 백지수표로 작용했다. 그래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이 안전하게 머무르는 것이다.[28] 유럽에선 한국 언론에서 관심도 없는 중동내 인권 탄압에 대해 상당히 자주 비중을 두고 보도한다. 시민들도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이러한 사회 문제들에 대한 토론을 자주 하는 편이다.[29] 극좌진영은 안티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과격하면 과격했지 인종차별에는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다.[30] 급진좌파들의 경우 다민족 국가로서의 일국 방안을 지지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팔레스타인의 급진좌파 조직 PFLP의 입장과 유사하다.[31] 실제 이스라엘 건국 초기 서구 좌파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건국자들이 주로 사회주의자들이었으며 사회주의적 가치에 입각한 국가를 건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예시로 사회주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는 키부츠의 초창기에 유럽권의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참여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경향은 1967년 이스라엘이 제3차 중동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영토를 강제점령하고 사실상의 식민지로 두기 시작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격화되며 이스라엘 정권의 성향이 극우로 치달으면서 서서히 뒤집힌 것이다.[32] 참고로, 서구에서도 성 비오 10세회 강경 분파의 리처드 윌리엄슨 같은 전통 가톨릭주의자가 홀로코스트 과장설과 반유대주의 성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서구와 이슬람권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서구에서는 이런 문제 발언을 한 사람들을 철저히 제명하고 매장시켰으나, 이슬람권에서는 대중들 사이에서 이런 과격한 발언을 하는 이슬람 이맘들의 지지가 갈수록 높아져간다는 것이다.[33] 상술한 버나드 루이스의 경우, 유대인들과 무함마드 사이의 전쟁은 무함마드 살아생전에 완료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교리에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나 혐오는 기독교권에 대해 더 약했다는 견해를 피력했던 바 있다.[34] 사실 이러한 환상이 아주 허황된 것만도 아닌게 삼위일체에 따라 예수=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에 비해서 이슬람교는 예수=예언자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교는 비주류 계열이 아닌 이상 예수를 예언자로도 인정하지 않기에 이미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슬람교는 당시에 존재하던 기독교, 유대교 모두 영향을 받았기에 충돌을 안 피할 수가 없다.[35] 사실 당시 상황을 보면 그럴 만도 했던 게 메디나로 도피한 당시에 무함마드의 상황이 워낙 나빴다. 하다못해 같은 아랍 부족조차도 꾸라이시 출신인 무함마드가 꾸라이시가 있는 메카를 공격하겠다는 발상을 패륜행위로 여겼다. 겨우겨우 동맹을 맺은 이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도적떼였다.[36] 바누 나디르는 낙타 600마리에 재산을 들고 메디나를 떠나야 했고 남은 재산들은 모두 무슬림들의 차지가 되었다.[37] 이슬람 기록에서 이때 살해당한 바누 쿠라이자 남자의 수는 서로 다르지만, 보통 6~9백 명이라고 설명한다.[38] 서안지구에 불법 정착촌을 세우는 등의 문제만 봐도 이스라엘이 오롯이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39] 현재도 한국 군대에선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인 목소리를 비추는 안보 동영상들을 틀어주고 있다.[40] 총기나 역사 다큐, 아니면 나치 추종자가 올린 고의적인 찬양 동영상 등.[41]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도 이 엽기적인 계획은 다른 아프리가 국가들의 항의로 취소되었다.[42] 이스라엘은 더이상 입국 스탬프를 여권에 찍지 않고 대신 별도의 출입국 기록 증서를 발행해주는 식으로 입국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슬람권 국가 입국시에도 더이상 이스라엘 입국 여부 자체가 문제가 될 확률은 낮다.[43] 독일 민족민주당과 연계된 신문이다.[44] Robert S. Wistrich (17 October 1985). Hitler's apocalypse: Jews and the Nazi legacy. Weidenfeld & Nicolson. p. 188. ISBN 978-0-297-78719-8.[45] Maximilian Gottschlich "Die große Abneigung. Wie antisemitisch ist Österreich? Kritische Befunde zu einer sozialen Krankheit" Vienna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