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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1 07:02:33

김홍명

미야기 히로아키에서 넘어옴
김홍명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fffff [[빙그레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31번}}}
김한근
(1985.8.19.~1987)
김홍명
(1988~1992)
김성열
(1993~1994)
}}} ||
미야기 히로아키
[ruby(宮城, ruby=みやぎ)] [ruby(弘明, ruby=ひろあき)] | Hiroaki Miyagi
한국명 김홍명 (金弘明)
출생 1962년 6월 16일 ([age(1962-06-16)]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츠루미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일본 요코하마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0년 드래프트 3라운드 (야쿠르트)
소속팀 야쿠르트 스왈로즈 (1980~1987)
빙그레 이글스 (1988~1992)

1. 개요2. 선수 경력
2.1. 일본 시절2.2. 빙그레 이글스 시절
3. 은퇴 이후4. 재일 여부5. 연도별 성적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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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빙그레 이글스의 야구선수. 본명은 미야기 히로아키(宮城弘明)

2. 선수 경력

2.1. 일본 시절

고등학교 시절부터 키 193cm, 몸무게 100kg의 큰 체격으로 다르빗슈 이전 고시엔 역사상 가장 큰 투수로 기록되며 점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으나 구속이 나오지 않아 주전이 되지 못했다. 1980년에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했고, 1983년도에 본격적으로 등판에 나섰지만 팔꿈치에 물집이 잡히고, 1985년 들어서는 양손으로 얼굴을 씻을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하니 성적을 잘 낼리도 없어서 3년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으며, 이후 재활을 거쳐 1987년도에 FA로 풀려서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로 이적하려 했지만 그간의 성적이 좋지 않은지라 불발되었다. 이렇게 되자 일본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뒤에 재일교포라고 속이고 한국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1]

2.2. 빙그레 이글스 시절

88년 일본에서 은퇴위기에 몰려있었지만 현역연장이 간절했던 김홍명은 스카우트에게 재일교포라고 속이고 [2] 빙그레와 계약금 3200만원,연봉 2900만원 이라는 좋은 조건으로 입단해서 4.27 8승 13패를 기록했다. 이후 89년 6승 8패, 90년 8승 3패를 기록했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 91년부터 성적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92년에는 주로 추격조 불펜투수로 나와서 6.34 5승 4패를 기록했지만 워낙 압도적인 전력이라 팀은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었지만 준우승을 하는 바람에 우승반지는 못 얻었다. [3] 콩그레 1992년 시즌이 끝난 뒤에 방출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KBO 통산 성적은 119경기 등판 30승 31패 평균자책 4.43 일본에서는 입단기록만 있는 투수였지만, 은퇴 위기에서 한국와서 뛰어나지는 않아도 그럭 저럭 성적을 낸 셈이었고 돈도 쏠쏠하게 벌었다. 김홍명 본인도 그 때문인지 한국생활에 대해서 상당히 만족했다.

3. 은퇴 이후

우연히 안토니오 이노키가 창설한 스포츠평화당에 시의원 비서로 일하다 고향인 요코하마에서 자민당 소속으로 2003년도 시의원에 출마하기도 했지만 낙선 후 기업체에서 근무하다 현재는 요코하마에서 야구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 단어 일부를 기억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뛴걸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4. 재일 여부

김홍명이라는 선수명으로 빙그레 이글스에서 5년간 뛴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야구 팬들에게는 재일교포로 알려져 있지만 이게 당시 외국인 선수 제도가 없었던 KBO 리그에서 뛰기 위해 미야기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2003년일본의 유명 주간지 슈칸 베이스볼과 TBS 테레비 방송에서는 미야기가 원래 순수 일본인이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기 위해 재일 한국인 행세를 했다는 내용의 기사와 프로그램을 내보내기도 했고 그 후 박동희 기자의 2016년 취재 기사에서도 미야기가 재일이라는 근거는 찾을 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빙그레가 KBO를 통해 NPB에 신원조회한 건 김홍명의 재일동포 여부가 아닌 ‘한국 프로야구에서 뛸 수 있는 자격 여부’를 확인하는 통상적인 신분조회에 불과했으며 ‘재일동포 여부’는 어디에서도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한다. 본인과 아버지가 훗날 현역연장을 위해 속였다고 증언을 하였다.

참고로 일본 위키백과에서도 재일교포인 척 해서 KBO 리그에 입단한 'KBO 리그에서 뛴 최초의 순수 일본인'이라고 적혀져 있다.

요즘시대면 공문서 위조 논란으로 첼시 리, 세르징요 같은 사태로 번져도 할말없지만 은퇴한 뒤에야 밝혀졌고 저 두 선수에 비해 활약이 미미해 큰 논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1988 빙그레 24 151⅔ 8 13 0 0 4.27 158 8 72 4 61 1.52
1989 23 125⅔ 6 8 0 0 4.01 119 7 63 6 78 1.45
1990 34 112 8 3 0 0 3.38 106 5 64 1 49 1.52
1991 19 55⅓ 3 3 0 0 5.86 76 4 32 4 34 1.95
1992 19 61 5 4 0 0 6.34 69 7 32 0 30 1.66
KBO 통산
(5시즌)
119 505⅔ 30 31 0 0 4.43 528 31 263 15 252 1.56

6. 관련 문서


[1] 활동명도 단순하게 한국에 가장 많은 성씨인 김씨와 본인의 이름인 히로아키를 한국식으로 읽은 홍명을 붙여 김홍명으로 활동했다.[2] 한국에 가기 위해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해 스카우트에게 간단한 한국어를 어필했다고 한다.[3] 하지만 이 당시 KBO에 우승반지라는 개념이 없어 우승팀 롯데 선수단도 지급받지 못했다.[4]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