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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2002~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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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역대 월드컵 기록
20세기 2002~2022

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1]

대한민국은 이 대회 개최국이었기에 지역예선을 면제받아 자연스럽게 5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차범근이 경질된 후 허정무가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는데, 허정무호 역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조별리그에서 쿠웨이트에게 패배해 조별리그 탈락 직전까지 갔다가 3차전에서 인도네시아를 꺾고 간신히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지난 대회 때 2:6 대참패를 기록한 이란을 맞아 연장 혈투 끝에 2:1로 꺾고 4강에 올랐다. 그러나 이란과 씨름하느라 진을 다 뺀 탓인지, 4강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1:2로 패배해 또 다시 우승에 실패했다. 3위 결정전에서 중국을 1:0으로 꺾고 간신히 3위를 했지만 라이벌이자 공동 개최국 일본은 우승을 차지했기에 상처만 남고 말았다.

결국 허정무는 아시안컵이 끝난 직후 재계약 없이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개최국으로서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이왕이면 거물급 외국인 감독을 섭외하자는 여론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대한축구협회는 1순위로 지난 대회에서 프랑스에게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겨준 에메 자케와 접촉했다. 그러나 자케는 어떤 팀 감독도 맡고 싶지 않고 쉬고 싶다며 거절했고, 2순위로 접촉한 인물이 바로 지난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울렸던 거스 히딩크였다. 거스 히딩크는 대한축구협회 측의 제안에 썩 매력을 느끼지 않았으나, 프랑스 월드컵 이후 그도 커리어에 하락세가 와서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던 데다가 대한민국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은 요구사항까지 다 들어주겠다고 하니 결국 대한민국의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이렇게 출범한 히딩크호도 처음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월드컵의 예행 연습 같은 대회인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개막전에서 대한민국은 프랑스에게 0:5 참패를 당했다. 이후 멕시코를 2:1로 이기고 호주를 1:0으로 이겼지만, 프랑스가 호주에게 0:1로 패배하는 바람에 멕시코는 3전 전패로 탈락이 확정되었고 한국, 프랑스, 호주 3팀이 모두 2승 1패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대한민국은 골득실이 -3에 불과해 결국 조 3위 대회 5위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공동 개최국 일본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그 때문에 거스 히딩크 감독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컨페드컵 이후로는 유럽 원정 평가전을 떠났는데, 이때 당시 황금세대가 즐비했던 체코를 상대로 또 0:5 참패를 당했다. 이때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게 붙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바로 '오대영'이었다. 계속되는 졸전으로 인해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경질하라는 여론이 솔솔 일어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외국인 지도자들에게 배타적이었던 대한민국의 원로 축구인들이 불을 지폈다. 조광래 전 감독은 칼럼을 통해 베스트 11을 빨리 정하여 전술 조직력을 다지지 않고 매일 체력 훈련만 하는 히딩크를 강하게 비판했고, 박종환 전 감독은 아예 거스 히딩크를 사기꾼이라고 거칠게 비난하며 자신이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 8강까지 진출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이렇게 점점 여론이 악화되었지만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은 자신의 시계는 2002년 6월에 맞춰져 있다고 받아치며 기다려줄 것을 호소했다.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준도 거스 히딩크 감독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흔들리지 않게 다잡아 주었다.

거기다가 2001년 12월에 있었던 조 추첨은 대한민국을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대한민국은 폴란드, 포르투갈, 미국과 함께 D조에 속했는데, 폴란드는 그 빡센 유럽 지역예선을 가장 먼저 통과해 본선 진출에 성공한 팀이었고 포르투갈은 당시 루이스 피구, 파울레타, 세르지우 콘세이상 등 황금세대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던 우승 후보였으며 미국 역시 북중미의 강호로 마냥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했던가? 공동 개최국인 일본은 유럽에서도 중위권 정도 실력에 불과한 벨기에, 러시아, 그리고 약체인 튀니지와 함께 H조에 속해 대한민국보다 훨씬 더 수월해서 부럽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흔들리던 히딩크호가 다시 희망을 찾게 된 건 2002년 3월이었다.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튀니지, 핀란드, 터키와 맞붙어 1승 2무의 성적을 거두며 서서히 여론이 반전되기 시작했고, 4월에는 2002 CONCACAF 골드컵 4강에서 1:3 패배를 안겨주었던 코스타리카와 다시 맞붙어 2: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5월에는 스코틀랜드를 4:1로 대파했고, 뒤이어 마이클 오언, 데이비드 베컴 등이 버티던 잉글랜드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년 전 0:5 참패를 안겨준 프랑스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으로 맞서다 2:3 석패를 당했다. 1년 사이에 이렇게 팀이 강해지면서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얻었고, 이번에야말로 첫 승과 16강이 가능하리라 보았다.

1.1. 32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2 : 0 승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D조 1경기
2002년 6월 4일 화요일 20:30 (UTC+9)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연제구)
주심: 파일:UEFA COL.png 오스카르 루이스
관중: 48,760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0
파일:폴란드 국장(2002 축구).pn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파일:UEFA POL.png 폴란드
26' 황선홍 (A. 이을용)
53' 유상철
파일:득점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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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UEFA KOR.png 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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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2강 조별리그 미국전 - 1 : 1 무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D조 3경기
2002년 6월 10일 월요일 15:30 (UTC+9)
대구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수성구)
주심: 파일:UEFA SUI.png 우르스 마이어
관중: 60,778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1 : 1
파일:USA USSF 2002.pn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파일:UEFA USA.png 미국
78' 안정환 (A. 이을용) 파일:득점 아이콘.svg 24' 클린트 매시스 (A. 존 오브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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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UEFA USA.png 브래드 프리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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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32강 조별리그 포르투갈전 - 1 : 0 승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D조 5-1경기
2002년 6월 14일 금요일 20:30 (UTC+9)
인천문학경기장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심: 파일:UEFA ARG.png 앙헬 산체스
관중: 50,239명
파일:Portugal FPF 2002.png 0 : 1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UEFA POR.png 포르투갈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 파일:득점 아이콘.svg 70' 박지성 (A. 이영표)
27' 주앙 핀투
66' 베투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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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UEFA KOR.png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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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6강 이탈리아전 - 2 : 1 승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6강 8경기
2002년 6월 18일 화요일 20:30 (UTC+9)
대전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유성구)
주심: 파일:UEFA ECU.png 비론 모레노
관중: 38,588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1
(서든데스 연장전)
파일:Italy FIGC 2000 2002.pn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파일:UEFA ITA.png 이탈리아
88' 설기현
117' (골든골) 안정환 (A. 이영표)
파일:득점 아이콘.svg 18' 크리스티안 비에리 (A. 프란체스코 토티)
-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103' 프란체스코 토티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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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UEFA KOR.png 안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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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8강 스페인전 - 0 : 0 무(PSO 5 : 3 승)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3경기
2002년 6월 22일 토요일 15:30 (UTC+9)
광주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서구)
주심: 파일:UEFA EGY.png 가말 간두르
관중: 42,114명
파일:스페인 국장.svg 0 : 0
A.E.T.
(PSO 3 : 5)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UEFA ESP.png 스페인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 파일:득점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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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UEFA KOR.png 이운재
승부차기
파일:UEFA ESP.png 스페인
GK: 이케르 카시야스
3 : 5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2]
GK: 이운재
후축 선축
페르난도 이에로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1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3] 황선홍
루벤 바라하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2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박지성
사비 에르난데스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3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설기현
호아킨 산체스 파일:승부차기 실패 아이콘.svg
(골키퍼 선방)
4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안정환
- 5 파일:승부차기 성공 아이콘.svg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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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강 독일전 - 0 : 1 패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 1경기
2002년 6월 25일 화요일 20:30 (UTC+9)
서울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주심: 파일:UEFA SUI.png 우르스 마이어
관중: 65,256명
파일:Germany DFB 2002.png 1 : 0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UEFA GER.png 독일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75' 미하엘 발락 파일:득점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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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UEFA GER.png 미하엘 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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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3위 결정전 터키전 - 2 : 3 패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로고_좌우.svg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위 결정전
2002년 6월 29일 토요일 20:30 (UTC+9)
대구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수성구)
주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사드 마네
관중: 63,483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3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파일:UEFA KOR.png 대한민국 파일:UEFA TUR.png 터키
9' (FK) 이을용
90+3' 송종국 (A. 유상철)
파일:득점 아이콘.svg 1'[4]11초로 월드컵 역대 최단 시간 득점이다.] 하칸 쉬퀴르 (A. 일한 만시즈)
13', 32' 일한 만시즈 (A. 13', 32' 하칸 쉬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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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최우수 선수: 파일:UEFA TUR.png 하칸 쉬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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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6 FIFA 월드컵 독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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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가 계약 만료로 대표팀을 떠난 후, 한동안 공석이었던 대표팀 감독 자리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움베르투 코엘류가 부임했다. 그러나 새로이 출범한 코엘류호 역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사실 출범 초기에 맞붙었던 상대들과 결과를 보면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우루과이를 상대로 0:2로 패했지만 슈팅 수는 대한민국이 10개나 더 많았고 볼 점유율도 더 높았다. 며칠 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매우 선전해 0:1로 석패했다. 그런데 문제는 4강 신화의 기억이 너무나도 진하게 남아서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는 것으로, 이로 인해 코엘류는 급속도로 인기를 잃었다.[6]

그런데다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예선에서 베트남에게 0:1로 패배하고 뒤이어 오만에 1:3으로 패배하는, 이른바 오만 쇼크로 코엘류에 대한 여론은 마치 화산 폭발 직전과 같았다. 간신히 재신임을 얻은 코엘류호는 우여곡절 끝에 독일 월드컵 예선에 돌입했다. 이 대회에서 아시아는 4.5장의 출전권을 부여받았다. 우선 예선 참가국 중 FIFA 랭킹이 가장 낮은 14개 팀끼리 홈 &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 뒤 살아남은 7개 팀과 부전승으로 2차 예선에 올라온 25개 팀과 함께 32개 팀이 8개 조를 이루어 각 조 1위 팀만이 최종 예선에 오른다. 그리고 최종 예선에 오른 8개 팀은 2개 조로 나누어 각 조 1위, 2위 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3위 팀은 3위 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그리고 그 경기 승자는 북중미 지역 최종예선 4위 팀과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승리하면 출전권을 확보한다.

2차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레바논, 베트남, 몰디브와 함께 7조에 속했다. 1차전 레바논과의 홈 경기는 2:0으로 가볍게 승리했다. 그러나 2차전 몰디브 원정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이른바 몰디브 쇼크. 결국 이 사태로 인해 코엘류는 전격 경질되었고, 후임으로 네덜란드 출신의 조 본프레레 감독이 부임했다. 이렇게 출범한 본프레레호는 베트남과의 홈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일단 한숨을 돌렸다. 2승 1무로 조 1위 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2위 레바논과의 승점 차가 겨우 1점이었다. 4차전 베트남 원정 경기에서도 박진섭자책골을 넣으며 불리한 경기를 했지만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레바논 역시 몰디브를 5:2로 이겼기에 여전히 1점 차로 불안한 1위를 했다. 이제 5차전 레바논 원정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레바논과의 승점 차를 4점으로 벌려서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 중요한 경기에서 1:1 무승부에 그치며 결국 최종전까지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6차전 몰디브와의 홈 경기에서도 상당히 고전했다가 후반 중반에야 김두현의 선제골과 이동국의 쐐기골로 2:0 승리를 거두며 4승 2무로 조 1위를 지켜 최종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최종예선에 오른 대한민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A조에 속했다. 1차전 상대는 쿠웨이트였다. 2005년 설날에 치른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이동국이영표의 골로 가볍게 2:0 승리를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2차전 상대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1989년 이후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기지 못하는 징크스를 갖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사우디아라비아의 담맘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졸전 끝에 그만 0:2로 패배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본프레레는 경기 후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인터뷰를 하여 더욱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며칠 후 홈에서 열린 3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도 상당히 고전한 끝에 2:1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A조의 중간 순위는 대한민국이 2승 1패로 조 1위, 사우디아라비아가 1승 2무로 조 2위, 쿠웨이트가 1승 1무 1패로 조 3위, 우즈베키스탄이 1무 2패로 조 4위에 있었다. 4차전은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우즈베키스탄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또 불리한 경기를 했으나, 경기 막판에 당시 떠오르는 신예였던 박주영의 천금 같은 동점골로 간신히 1:1 무승부를 거두게 되었다. 4차전 직후 A조 순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8점으로 1위, 대한민국이 7점으로 2위, 쿠웨이트가 4점으로 3위, 우즈베키스탄이 2점으로 4위였다. 그러므로 5차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 본선 진출이 확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쿠웨이트를 무려 4:0으로 대파하여 6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경기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 경기였다. 이미 본선 진출은 확정되었지만 대한민국으로선 이 경기가 5개월 전 담맘에서 겪은 치욕을 설욕할 기회였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또 사우디아라비아에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2005년 동아시안컵에서 2무 1패라는 졸전으로 꼴찌를 한데 이어 또 사우디아라비아에게 패배하자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본프레레는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도 경질되고 말았다.

그 뒤로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인물은 역시 네덜란드 출신이었던 딕 아드보카트였다. 딕 아드보카트는 4년 전 4강 신화를 함께 했던 히딩크 사단의 일원인 핌 베어벡 코치와 압신 고트비 비디오 분석관과 함께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이렇게 출범한 아드보카트호는 본선 직전까지 열린 평가전에서 조금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코엘류호, 본프레레호 때 모습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기에 본선에 대한 기대감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조 추첨 결과 대한민국은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함께 G조에 속해 나름 최상의 조 편성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4강 신화 재현의 꿈을 안고 태극전사들은 결전의 땅 독일로 떠났다.

2.1. 32강 조별리그 토고전 - 2 : 1 승

[[2006 FIFA 월드컵 독일|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_좌우.svg
]]
2006 FIFA 월드컵 독일 G조 1경기
2006년 6월 13일 화요일 15:00 (UTC+1)
도이체 방크 파르크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주심: 그레이엄 폴 (잉글랜드)
관중: 48,000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1 파일:토고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54' (FK) 이천수
72' 안정환 (A. 송종국)
파일:득점 아이콘.svg 31' 모하메드 카데르 쿠바자
-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53' 장 폴 아발로 파일:경고 퇴장 아이콘.svg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안정환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드보카트호/2006 FIFA 월드컵 독일/토고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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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32강 조별리그 프랑스전 - 1 : 1 무

[[2006 FIFA 월드컵 독일|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_좌우.svg
]]
2006 FIFA 월드컵 독일 G조 3경기
2006년 6월 18일 일요일 21:00 (UTC+1)
[7]
첸트랄 슈타디온[8] (독일, 작센 주 라이프치히)
주심: 베니토 아르춘디아 (멕시코)
관중: 43,000명
파일:France FFF 2006.png
1 : 1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9' 티에리 앙리 (A. 실뱅 윌토르) 파일:득점 아이콘.svg 81' 박지성 (A. 조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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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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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2강 조별리그 스위스전 - 0 : 2 패

[[2006 FIFA 월드컵 독일|
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_좌우.svg
]]
2006 FIFA 월드컵 독일 G조 5-2경기
2006년 6월 23일 금요일 21:00 (UTC+1)
하인츠 폰 하이덴 아레나 (독일, 니더작센 주 하노버)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 (아르헨티나)
관중: 43,000명
파일:스위스 축구 협회 과거 엠블럼.png 2 : 0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23' 필리페 센데로스 (A. 하칸 야킨)
77' 알렉산더 프라이
파일:득점 아이콘.svg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Man of the Match: 파일:스위스 국기.svg 알렉산더 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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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9]

독일 월드컵을 17위로 마친 후 딕 아드보카트는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으로 떠나버렸고, 대한축구협회는 수석코치 핌 베어벡을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이렇게 출범한 베어벡호는 '생각하는 축구'라는 슬로건을 표방했다.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라는 두 명장을 훌륭하게 보좌했던 베어벡이었기에 한국 축구팬들이 거는 기대는 내심 컸으나, 정작 베어벡호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런데다 베어벡은 어떤 면에선 왕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정말 불운했다.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직전부터 주력 선수들인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EPL 3인방은 부상으로 이미 엔트리에서 대거 이탈했고, 다른 공격 옵션들인 박주영, 안정환 등은 리그에서 부진, 그나마 믿고 뽑았던 이동국미들즈브러 FC에서 최악의 시즌을 보낸 후 잔부상에 시달려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등 주전 공격진은 사실상 전멸당한 상태였다. 그럼 이제 K리그에서 새 얼굴들을 뽑아야 했는데 문제는 K리그 감독들이 줄줄이 선수차출을 거부했다는 것이다.[10] 그렇기에 베어벡은 선수 선발에 심각한 제약을 겪었다.

이렇게 쓸 수 있는 자원이 극단적으로 한정된 상황에서 베어벡이 취한 길은 '극단적인 수비축구'였다. 물론 조별리그 2차전에서 바레인에게 1:2로 덜미를 잡히는 이른바 바레인 쇼크를 겪기도 했지만, 3차전에서 조 최약체 인도네시아를 1:0으로 간신히 꺾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8강 상대 이란을 맞아 120분 동안 걸어 잠그는 질식 수비로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4:2 승리를 거두어 4강에 올랐다. 그리고 4강에서도 당시 화끈한 공격 축구를 구사했던 이라크를 맞아 또 120분 동안 걸어 잠그는 질식 수비로 0:0으로 버티며 승부차기로 끌고 갔으나 이때는 3 : 4로 패배했다.[11] 그리고 3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도 또 120분 동안 걸어 잠그는 수비 축구로 일관하여 3연속 승부차기로 끌고 갔고 6:5로 승리하며 3위를 차지했다. 순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성적이 1승 4무 1패(승점 7점), 3득점 3실점이어서 국민적 비난이 폭발했다. 결국 베어벡은 '포백 수비의 완성'이란 업적을 남겼으나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베어벡이 떠난 후 몇 달 동안 공석으로 유지되었던 대표팀 감독은 허정무가 차지하게 되었다.[12]

이번 대회에도 아시아는 4.5장의 출전권을 부여받았다. 당시 지역 예선은 이렇게 치러졌다. AFC 소속 46개 팀 중 43팀이 지역 예선에 출전했는데 지난 대회 본선에 진출했던 대한민국, 호주,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 5개국은 무조건 3차 예선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나머지 38개 팀은 1차 예선을 치러야 하는데 19개 팀씩 A, B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 팀과 B그룹 팀을 무작위로 추첨해 홈 & 어웨이 방식으로 겨루어 합산 점수를 따져 점수가 높은 쪽이 이긴다. 그리고 1차 예선 생존자 19개 팀을 피파랭킹 순으로 정리했을 때 상위 11개 팀은 3차 예선에 직행하고 하위 8개 팀은 2차 예선을 치른다. 예선 방식은 1차 예선과 같다. 그리하여 3차 예선에 직행한 5팀 + 1차예선에서 생존한 11팀 + 2차 예선에서 생존한 4팀까지 총 20개 팀은 5개 조로 나누어 홈 & 어웨이 방식의 리그제로 경기하고 각 조 1위, 2위가 최종 예선에 진출한다. 최종 예선에 오른 10개 팀은 다시 2개 조로 나누어 홈 & 어웨이 방식 리그제로 경기하고 각 조 1위, 2위는 본선에 직행한다. 그리고 3위 팀은 3위 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그 승자가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1위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러 이겨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3차 예선부터 시작했는데 북한, 요르단, 투르크메니스탄과 함께 3조에 속했다.[13] 1차전에서 대한민국은 투르크메니스탄을 4 : 0으로 대파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나 2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선 북한의 밀집 수비에 고전하며 0 : 0으로 비겼다. 3차전 요르단과의 홈 경기에서도 2 : 0으로 앞서가다가 수비 실책으로 2 : 2 무승부에 그쳤다. 그러나 4차전 요르단 원정 경기에서 고전했으나 1 : 0으로 이겼고 5차전 투르크메니스탄 원정 경기도 3 : 1로 승리하며 한 경기 남은 시점에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한편, 북한도 한국과 같은 승점을 기록해 역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6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선 또 0 : 0 무승부에 그쳐 3승 3무로 3차 예선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최종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죽음의 조에 걸리고 말았다. 한국은 북한,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 함께 B조에 속했다. 심히 껄끄러운 상대들만 잔뜩 있었던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1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서 또 1 : 1 무승부에 그쳐 2008년 동아시안컵부터 4연속 북한전 무승부의 늪에 빠져버렸다. 출발부터 삐끗한 것이다. 그러나 2차전 아랍에미리트와의 홈 경기에서 4 : 1 대승을 거두며 다시 본 궤도를 찾아갔다. 그리고 3차전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서 기어이 19년 간 이어온 사우디 무승 징크스를 깨고 2 : 0 승리를 거두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4차전은 아자디 징크스로 악명 높은 이란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선제골을 먹으며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후반 막판 주장 박지성의 극적인 동점골로 1 : 1 무승부를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중간 순위는 2승 2무(승점 8점)을 기록한 대한민국이 1위였고 예상 외로 북한이 2승 1무 1패(승점 7점)를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1승 3무(승점 6점)를 기록한 이란이 4위는 1승 1무 2패(승점 4점)에 그친 사우디아라비아가 5위는 1무 3패(승점 1점)에 그친 아랍에미리트가 차지했다.

5차전 경기는 북한과의 홈 경기였다. 한국으로선 반드시 이 경기를 이겨야 조기에 본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밀집수비를 깨뜨리는데 또 애를 먹으며 고전했고 오히려 북한 에이스 정대세에게 실점할 뻔했으나 이운재 골키퍼가 라인을 넘기 직전에 쳐내며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렇게 또 0 : 0의 스코어가 이어지던 중 후반 41분에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킥커 김치우가 왼발로 감아찬 것이 북한 주장 홍영조 손에 맞고 굴절되며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고전 끝에 북한을 1 : 0으로 이긴 한국은 북한보다 1경기 덜 치른 상태에서 1위 자리를 굳혔다. 그리고 6차전 아랍에미리트 원정 경기에선 양 팀이 서로 1명씩 퇴장당하는 거친 경기 끝에 2 : 0으로 승리해 4승 2무(승점 14점)의 전적을 기록하며 2경기 남은 시점에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아시아 팀으로선 최초로 세계에서 6번째로 7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7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 경기에선 크게 무리하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0 : 0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 경기 결과로 남은 경기에 관계 없이 한국은 조 1위가 확정되었다.

이제 최종예선도 각자 1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A조는 이미 호주와 일본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고 B조에서도 한국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이제 남은 직행 티켓은 B조 2위 자리 단 하나뿐이었다. 7차전까지 B조의 순위는 한국이 4승 3무(승점 15점)로 1위,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가 3승 2무 2패(승점 11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북한이 +2, 사우디아라비아가 0이어서 북한이 2위, 사우디아라비아가 3위였다. 그리고 이란이 2승 4무 1패(승점 10점)로 4위였고 아랍에미리트는 1무 7패(승점 1점)로 5위였다.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된 한국과 탈락이 확정된 아랍에미리트를 뺀 나머지 3팀 모두 본선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남북한이 같이 본선에 가는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본선에 진출하는 경우의 수는 이랬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기면 무조건 본선에 간다. 만약 비기게 되면 이란의 승점이 13점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한국이 이란과 최소한 비기기라도 해야 한다. 만약 이란이 이길 경우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다. 만약 지게 되면 한국이 이란을 반드시 이겨야만 플레이오프라도 갈 수 있다. 먼저 한국 대 이란의 경기가 열리고 뒤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대 북한의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도 한국은 후반 초반에 선제골을 내주며 불리한 경기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장 박지성이 한 건했다. 침대 축구로 시간을 끌던 이란을 향해 후반 36분에 또 다시 천금 같은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경기는 1 : 1 무승부로 끝이 났다. 이로서 한국은 최종 예선을 4승 4무(승점 16점)로 마치며 20년 만에 무패로 끝냈다. 이 경기 무승부로 이란의 승점이 11점에 묶이면서 북한이 크게 유리해졌다. 최종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골키퍼 리명국의 신들린 선방쇼와 질식 수비를 앞세워 0 : 0 무승부를 기록했다.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는 3승 3무 2패(승점 12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북한이 2골이 더 앞서며 B조 2위를 차지해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이후 44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분단 국가가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한 건 서독과 동독이 함께 진출했던 1974 FIFA 월드컵 서독 이후 36년 만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서독이 개최국이었고 나란히 지역 예선을 치러 통과한 건 이번이 최초였다.

그리고 조 추첨 결과 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함께 B조에 속해 비교적 무난한 조 편성을 받았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희대의 졸장 디에고 마라도나의 엉성한 지휘로 인해 지역예선에서 무려 6번이나 패배하며 겨우겨우 본선에 올라왔고,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는 세대교체 실패로 하락세를 타고 있었으며 한국이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팀이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좀 어렵지만 그리스와 나이지리아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같이 본선에 올라온 북한은 조 추첨에서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죽음의 조인 G조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도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난이도인데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한 북한에는 너무도 가혹하기 그지없는 조 편성이었다.

3.1. 32강 조별리그 그리스전 - 2 : 0 승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 1경기
2010년 6월 12일 토요일 13:30 (UTC+2)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주심: 마이클 헤스터 (뉴질랜드)
관중: 31,513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0
파일: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7' 이정수 (A. 기성용)
51' 박지성
파일:득점 아이콘.svg -
경기 다시 보기(전반전) | 경기 다시 보기(후반전)
Man of the Match: 파일:UEFA KOR.png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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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1 : 4 패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 3경기
2010년 6월 17일 목요일 13:30 (UTC+2)
사커 시티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주심: 프랑크 더 블레이케러 (벨기에)
관중: 82,174명
파일: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2010).png
4 : 1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16' (OG) 박주영
32' 곤살로 이과인 (A. 니콜라스 부르디소)
75' 곤살로 이과인
79' 곤살로 이과인 (A. 세르히오 아구에로)
파일:득점 아이콘.svg 45' 이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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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UEFA ARG.png 곤살로 이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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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강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 - 2 : 2 무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 5-2경기
2010년 6월 22일 화요일 20:30 (UTC+2)
모지스 마비다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
주심: 올레가리우 벤케렌사 (포르투갈)
관중: 61,874명
파일: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 : 2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11' 칼루 우체 (A. 치디 오디아)
68' (PK) 야쿠부 아이예그베니
파일:득점 아이콘.svg 37' 이정수 (A. 기성용)
48' (FK)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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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6강 우루과이전 - 1 : 2 패

파일: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고.svg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16강 1경기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16:00 (UTC+2)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주심: 볼프강 슈타르크 (독일)
관중: 30,597명
파일:Uruguay AUF 2010.png
2 : 1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7' 루이스 수아레스 (A. 디에고 포를란)
79' 루이스 수아레스 (A. 니콜라스 로데이로)
파일:득점 아이콘.svg 67' 이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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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UEFA URU.png 루이스 수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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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14]

첫 2라운드[15](16강 15위)를 달성했던 허정무는 계약 만료로 물러났고 새 감독으로 조광래가 부임했다. 조광래는 당시 스페인이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점유율 축구를 대한민국에도 도입하겠다고 나서며 대한민국 축구의 스타일을 바꾸겠다는 야심을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 야심차게 출범한 조광래호왕의 귀환이라는 슬로건으로 우승을 노리고 출전했던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4강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연장 혈투 끝에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명이 내리 실축하는, 이른바 삼연뻥으로 인해 또 우승에 실패하고 3위에 그쳤다. 16강 진출(15위)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될 대로 고조되어 있었는데 이 성적은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한편 이 대회를 끝으로 오랫동안 왼쪽 라인을 든든하게 지켰던 박지성이영표가 국대에서 은퇴했고 이제 그 대체자를 찾아야 했지만, 조광래의 얼토당토않은 포지션 파괴 실험으로 인해 좀처럼 대체자를 찾지 못했다. 이후 6월에 치른 가나, 세르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1승 1무의 성적을 거두며 다시 여론을 반전시키는 듯했지만 8월에 일본과의 친선 경기에서 있었던 이른바 삿포로 참사로 인해 조광래호에 대한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렇게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다운된 상태에서 대한민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 예선에 나섰다. 예선 방식은 지난 대회와 동일하게 진행되었고 대한민국은 3차 예선부터 치렀다. 다만 대륙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경우 남미 지역 예선 5위와 치른다는 게 다르다. 3차예선에서 한국은 레바논,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B조에 속했다. 1차전 레바논과의 홈 경기에선 박주영해트트릭지동원의 멀티골에 힘입어 무려 6:0 대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2차전 쿠웨이트 원정 경기에서는 졸전 끝에 1:1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고, 3차전 아랍에미리트와의 홈 경기에서도 답답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2:1 신승에 그쳤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B조의 순위는 한국이 2승 1무(승점 7점)로 조 1위, 쿠웨이트가 1승 2무(승점 5점)로 조 2위, 레바논이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조 3위, 아랍에미리트가 3패로 최하위에 있었다. 4차전 아랍에미리트 원정 경기에서도 한국은 90분 내내 답답한 경기를 하다가 막판에 이근호와 박주영의 골로 2: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5차전 레바논 원정 경기. 이 경기를 앞두고 대한민국이 3승 1무(승점 10점)로 조 1위, 레바논이 2승 1무 1패(승점 7점)로 조 2위에 있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레바논을 상대로 이기면 남은 경기에 관계 없이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무기력한 경기 끝에 레바논에게 1:2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른바 레바논 쇼크. 이로 인해 대한민국과 레바논의 승점은 10점으로 같아졌고, 설상가상으로 쿠웨이트가 아랍에미리트를 2:1로 이기면서 승점을 8점으로 추가해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최하위 아랍에미리트만 5전 전패로 탈락이 확정되었을 뿐 나머지 3팀 모두 마지막 경기에 따라 최종예선 진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한축구협회는 조광래를 전격 경질하였고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이었던 최강희를 차출 형식으로 빼왔다. 그러나 조광래를 경질한 것은 절차에 맞지 않는 밀실 행정이었고, 최강희를 선임한 것도 K리그 감독을 억지로 빼앗은 것에 가까워 축협은 이런 후진적인 일처리 방식 때문에 두고두고 까였다. 그런데다 최강희는 "나는 최종예선까지만 맡겠다."라며 스스로 부임하자마자 자신의 진퇴를 못 박아버렸다. 사실 이 말은 곧 거절하겠다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었지만, 당시 축협 회장 조중연은 최강희의 임명을 강행했다. 이제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6차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최강희호는 쿠웨이트의 강한 공격에 전반전 내내 고전했지만, 후반전에 이동국과 이근호의 릴레이 골로 2:0 승리를 거두어 4승 1무 1패(승점 13점)의 성적으로 조 1위를 차지해 최종예선에 진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마터면 최종 예선도 못 가고 떨어질 뻔했으나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최종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호주와 함께 톱 시드를 받았다. 대한민국은 이란,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레바논과 함께 A조에 속했다.

최종 예선 1차전은 카타르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선제 실점하는 불운을 겪었지만 이근호의 멀티골과 센터백 곽태휘, 공격수 김신욱의 골을 묶어 4:1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2차전 레바논과의 홈 경기에서도 3:0 대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3차전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에서는 기성용자책골을 넣는 불운한 경기를 한 끝에 2:2 무승부에 그쳤고, 4차전 아자디 징크스로 악명 높은 이란 원정에서는 마수드 쇼자에이의 퇴장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A조의 순위는 한국과 이란이 2승 1무 1패(승점 7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한국의 골득실이 +5, 이란의 골 득실이 0이어서 한국이 1위, 이란이 2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1승 2무 1패(승점 5점)를 기록한 우즈베키스탄이 3위, 카타르와 레바논이 1승 1무 2패(승점 4점), 2득점 5실점으로 공동 최하위였다.

5차전 카타르와의 홈 경기에서 한국은 카타르의 밀집수비와 침대 축구 콤비에 시종일관 고전했다. 후반 15분에 이근호가 어렵게 선제골을 넣었으나, 불과 3분 후에 또 세트피스 상황에서 실점하고 말았다. 1:1의 스코어가 이어지던 중 후반 45분이 다가고 5분의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주심 니시무라 유이치는 카타르의 의도적인 시간 지연 행위 때문에 5분이 지나도 경기를 끝내지 않고 추가시간에 추가시간을 또 적용했다. 그리고 추가시간 6분에 이동국의 슛이 골 포스트를 맞고 튕겨나왔는데, 그 리바운드 볼을 손흥민이 골문 밖 50cm 거리에서 잽싸게 밀어넣으며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렸다. 그리하여 카타르를 2:1로 간신히 꺾고 승점 3점을 추가했다. 이 경기 승리로 한국은 1경기 덜 치른 상태에서 우즈베키스탄과의 승점 차를 1점으로 좁혔다.

그리고 6차전 경기는 레바논 원정 경기였다. 2년 전 레바논 쇼크의 치욕을 씻을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한국은 이번에도 또 전반 12분 만에 선제 실점하며 어려운 경기를 했다. 패색이 짙어지던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 7분에야 김치우프리킥 동점골로 간신히 1:1 무승부를 거뒀다. 이 경기로 인해 레바논의 탈락이 확정되었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승점 11점으로 동률을 이뤘으나 한국은 골득실에서 앞서 다시 1위를 탈환했다. 그러나 이란이 카타르를 1:0으로 이겨 승점을 10점으로 추가해 불안한 1위였다. 뒤이어 7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경기에서도 한국은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다가 상대 수비수 쇼라흐메도프의 자책골 덕에 간신히 1: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뒤이어 이란도 레바논을 4:0으로 이기면서 카타르의 탈락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3팀은 마지막까지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예선전을 1경기 남긴 시점에서 A조의 순위는 이랬다. 1위는 4승 2무 1패(승점 14점)를 기록한 대한민국이었고 2위는 4승 1무 2패(승점 13점)의 이란, 3위는 3승 2무 2패(승점 11점)의 우즈베키스탄이었다. 4위는 2승 1무 4패(승점 7점)의 카타르, 5위는 1승 2무 5패(승점 5점)를 기록한 레바논이었다. 당시 레바논은 이미 모든 경기를 다 치렀고 나머지 4팀이 각각 1경기를 남겨둔 상태였다. 4팀 중 이미 탈락이 확정된 카타르를 뺀 나머지 3팀은 모두 본선 진출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사전 담합 및 승부조작 방지를 위해 최종전 한국 VS 이란과 우즈베키스탄 VS 카타르는 동시에 치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경기를 앞두고 최강희와 이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지독한 신경전을 벌였다. 그 때문에 경기는 시작 전부터 불타올랐다.

8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은 계속해서 발목을 잡았다. 이란 선수들이 하프 라인을 넘지 못할 정도로 쩔쩔매는 데도 도무지 이란의 골문은 열리질 않았다. 그렇게 전반전이 0:0으로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후반전에도 한국은 계속해서 공격을 펼쳤으나 끈적한 이란의 늪 수비에 막히며 고전했다. 그러던 중 후반 15분, 한국 수비수 김영권이 치명적인 수비 실책을 범했다. 이 볼을 레자 구차네자드가 잽싸게 가로채 이 경기에서 이란의 유일한 슈팅을 날렸는데 그게 골로 연결되었다. 결국 한국은 이 중요한 경기에서 이란에게 0:1로 패배했으며, 경기가 끝난 후에는 이른바 케이로스의 주먹감자 사건까지 터졌다. 같은 시각 우즈베키스탄이 카타르를 5:1로 크게 이겼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승점은 14점으로 같았으나 골득실에서 1골이 앞서 간신히 조 2위를 차지해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라이벌 일본이 탄탄대로를 걸으며 본선에 간 반면 한국은 살얼음을 디디며 통과해 본선 진출을 하고도 최강희는 욕만 잔뜩 퍼먹었다.[16] 거기다가 기성용의 최강희 조롱 파문으로 대표팀의 분위기는 점점 쑥대밭이 되었다.

취임 전 공언대로 최강희는 최종 예선이 끝나자 즉시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고 또 새 감독을 찾아야 했다. 축협은 마치 해외의 유명한 감독을 선임할 것처럼 요란 뻑적지근하게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의 축구팬들은 이미 그런 축협의 언플을 믿지 않았고, 결국 예상대로 홍명보가 신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홍명보호도 기대 이하의 모습만 보였다. 그나마 축협은 웬일로 지난 히딩크호 못지 않게 평가전 상대는 남부럽지 않게 잘 섭외해 주었다. 문제는 히딩크호는 강팀들과 부딪혀서 지면서 배워나가는 게 있었고 그를 통해 대표팀 내에 산적했던 문제점을 개선했다는 거지만, 홍명보호는 지기만 했을 뿐 배운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적했던 문제점은 전혀 개선된 것 없이 그대로 지속되었다. 그래도 조 추첨 결과라도 좋았기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조 추첨 결과 한국은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와 함께 H조에 속한 것이다. 이전까지의 조 편성과 비교해보면 이보다 더 최상일 수 없는 꿀조였다. 벨기에는 신흥 강호였지만 이제 막 뜨는 팀이라 중량감이 약했고, 러시아 역시 시드를 못 받은 유럽 팀들 중에선 그리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과 더불어 전력이 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데다가 무엇보다도 러시아로 재탄생한 이후로 한 번도 16강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알제리는 지난 대회에서도 1무 2패에 그친 약체였다. 그러니 상당히 쉬운 조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간과했던 건 홍명보가 이 쉬운 조도 험난한 조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심각하게 무능한 졸장이었다는 것이다. 본인부터가 전술적 능력이 전혀 없어서 자기가 잘 아는 한 가지 전술 이외에는 어떤 변화를 주지도 못했고, 그 점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또 선수 선발도 소속팀에서 잘 뛰고 있는 선수들을 배제하고 이미 폼이 떨어진 박주영, 윤석영 등을 발탁해 이른바 '의리축구' 논란이 일었다. 안 그래도 당시 대한민국은 2014년 4월에 있었던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나라 전체가 우울했던 상태였는데, 이미 평가전 성적도 바닥을 기고 있어서 월드컵이란 분위기가 안 느껴질 정도로 일찌감치 국민들이 기대를 접어버렸다.[17] 그렇게 홍명보호는 결전의 땅 브라질로 향했다.

4.1. 32강 조별리그 러시아전 - 1 : 1 무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H조 2경기
2014년 6월 17일 화요일 19:00 (현지 시각 기준)[18]
아레나 판타나우 (브라질, 쿠이아바)
주심: 네스토 피타나 (아르헨티나)
관중: 37,603명
파일: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 : 1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73'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 파일:득점 아이콘.svg 67'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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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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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32강 조별리그 알제리전 - 2 : 4 패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H조 4경기
2014년 6월 22일 일요일 16:00 (현지 시각 기준)
[19]
이스타지우 베이라히우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주심: 윌마르 롤단 (콜롬비아)
관중: 42,732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2 : 4
파일:Algeria_NFT_(logo).p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알제리 국기.svg 알제리
49' 손흥민 (A. 기성용)
71' 구자철 (A. 이근호)
파일:득점 아이콘.svg 25' 이슬람 슬리마니 (A. 칼 메자니)
27' 라피크 할리시 (A. 압델무멘 자부)
37' 압델무멘 자부 (A. 이슬람 슬리마니)
61' 야신 브라히미 (A. 소피앙 페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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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알제리 국기.svg 이슬람 슬리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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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32강 조별리그 벨기에전 - 0 : 1 패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로고_좌우.svg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H조 5-1경기
2014년 6월 26일 목요일 17:00 (현지 시각 기준)
[20]
아레나 코린치앙스 (브라질, 상파울루)
주심: 벤자민 윌리엄스 (호주)
관중: 61,397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0 : 1
파일: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1994~2019).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 파일:득점 아이콘.svg 77' 얀 베르통언
-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44' 스티븐 드푸르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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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21]

브라질 월드컵을 시원하게 말아먹은 홍명보는 사퇴 압박에 시달린 끝에 결국 자진 사임했다. 그리고 새 대표팀 감독으로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가 부임했다. "변화하라."라는 슬로건으로 출범한 슈틸리케호는 초반에는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1988년 대회 이후 27년 만에 4강의 벽을 넘었고, 또 몇 달 전 월드컵에서 졸전을 펼치는 바람에 잔뜩 먹구름이 끼어있었던 대표팀에게 힘이 될 만한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같은 해에 치른 동아시안컵에서도 중국을 2:0으로 이긴 뒤 일본과 1:1, 북한과 0:0으로 비겨 1승 2무의 성적으로 7년 만에 동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더욱 뜨거운 여론의 호응을 받았다. 그렇게 슈틸리케호는 뜨거운 국민적 호응을 받으며 러시아로 가는 대장정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도 AFC의 출전권은 그대로 4.5장이었다. 이번 대회 지역예선부터 월드컵 지역예선이 AFC 아시안컵 지역예선을 겸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먼저 1차예선은 AFC 가맹국 46개국 중 피파랭킹이 가장 낮은 12개 팀이 1차예선을 치러 6팀의 생존자를 가려낸다. 그리고 나머지 34개국은 2차예선에 직행하는데, 1차예선에서 살아남은 6개 팀과 함께 5개 팀씩 8개 조로 나누어 2차예선을 치른다. 2차예선에서 각 조 1위는 최종예선에 직행하고 2위 팀들 중 상위 4팀이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최종예선에 진출한 12개 팀은 6개 팀씩 2개 조로 나누어 각 조 1, 2위가 본선에 직행하고 3위 팀은 3위 팀끼리 대결을 하여 승자가 대륙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북중미 4위 팀과 대결해 승리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한국은 2차예선부터 경기를 치렀고, 2차예선에서 한국은 미얀마, 라오스, 레바논, 쿠웨이트와 함께 G조에 속했다.

1차전 미얀마 원정에선[22] 상대의 밀집 수비에 고전하며 2:0 신승에 그쳤다.[23] 그리고 2차전 라오스와의 홈 경기에선 주포 손흥민해트트릭과 신예 권창훈의 멀티골에 힘입어 8:0 대승을 거두었다. 3차전은 4년 전 레바논 쇼크로 유명한 레바논 원정이었고, 이번에는 3:0으로 대승을 거두며 4년 전의 굴욕을 설욕했다. 4차전 쿠웨이트 원정에서는 상당히 고전했지만 전반 12분에 터진 구자철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0으로 승리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G조의 순위는 한국이 4전 전승(승점 12점)으로 1위, 쿠웨이트와 레바논이 3승 1패(승점 9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에서 +9인 쿠웨이트가 +2인 레바논에 앞서 2위를 차지했고 레바논이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미얀마와 라오스가 1무 3패(승점 1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에서 -12인 라오스가 -13인 미얀마에 앞서 라오스가 4위, 미얀마가 5위였다.

5차전 미얀마와의 홈 경기에서는 장현수페널티킥을 실축하는 불운이 있었지만 4:0 대승을 거두었고, 6차전 라오스 원정 경기는 기성용과 손흥민의 멀티골을 앞세워 5:0 대승을 거두며 2경기 남은 상황에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7차전 레바논과의 홈 경기에선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야 최종예선에 진출하는 레바논이 사생결단으로 나오는 바람에 상당히 고전했지만 경기 막판에 이정협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신승을 거두어 전승가도를 이어갔다. 그리고 8차전은 쿠웨이트와의 홈 경기였는데, 쿠웨이트 정부가 대표팀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FIFA의 제지를 받아 출전이 정지되었고 결국 한국의 3:0 몰수승이 선언되면서 2차예선을 8전 전승, 27득점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최종예선에 진출한 팀들 중 2차예선을 무실점 전승으로 통과한 건 한국이 유일했다. 한편 최종예선 조 편성 결과 한국은 시리아, 이란, 우즈베키스탄, 중국, 카타르와 함께 A조에 속했다. 최종예선에 가기 전부터 휘청거렸던 지난 대회와는 달리 이번엔 시원시원하게 전승가도를 달리며 최종예선에 올랐기에 최종예선도 순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최종예선에 들어서자 초반부터 가시밭길을 걸었다. 공한증으로 이름난 1차전 중국과의 홈 경기에서는 후반 21분까지는 정즈자책골이청용, 구자철의 릴레이 골로 3:0으로 크게 앞서갔으나, 70분을 넘어서면서 정신줄을 놓은 수비진 때문에 2골을 연달아 실점해 3:2 신승에 그쳤다. 2차전 시리아 원정 경기에서는[24] 손흥민이 경고 누적으로 빠지자 공격에서 답답한 모습을 보인 끝에 시리아의 침대 축구에 당하며 0:0 무승부에 그쳤다. 3차전 카타르와의 홈 경기에서도 부실한 경기력과 모흐드 아미룰 이즈완 야콥 주심의 편파판정으로 인해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3:2 신승에 그쳤다. 4차전은 또 다시 지긋지긋한 아자디 징크스로 악명 높은 이란 원정이었다. 당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던 슈틸리케 감독로선 반드시 이 경기에서 이겨야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는데, 한국은 슈팅 1개에 그치는 졸전 끝에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런데다 경기 후 슈틸리케 감독이 "우리에겐 세바스티안 소리아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다."라며 선수 탓을 하는 망언을 하여 악화된 여론에 더욱 기름을 부었다. 5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홈 경기에서도 전반 25분에 마라트 비크마예프에게 실점하며 어려운 경기를 했으나 후반전에 남태희구자철의 연속골로 간신히 2:1 역전승을 거두어 위기를 넘겼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A조의 순위는 이란이 3승 2무(승점 11점)로 1위였고 한국이 3승 1무 1패(승점 10점)로 2위, 우즈베키스탄이 3승 2패(승점 9점)로 3위, 시리아가 1승 2무 2패(승점 5점)로 4위, 카타르가 1승 1무 3패(승점 4점)로 5위, 중국이 2무 3패(승점 2점)로 6위였다.

6차전은 중국 원정이었다. 현재 1~3위까지 승점 차이가 겨우 2점에 불과한 상황이어서 한국은 반드시 이 경기에서 승리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은 졸전 끝에 중국에게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른바 '창사 참사\'. 이 경기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은빛 여우 마르첼로 리피 감독에게 전술적으로 완벽하게 패배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즈베키스탄 역시 시리아에게 0:1로 패배한 덕분에 순위가 역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으나 시리아의 승점이 8점으로 올라서 격차가 2점으로 줄어버려 여전히 불안한 2위였다. 그리고 7차전 시리아와의 홈 경기에선 전반 4분 만에 홍정호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여전히 막장스러운 경기력을 보인 끝에 간신히 1:0으로 승리했다. 국민들은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재신임을 하며 계속 슈틸리케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결국 이것은 크게 패착으로 돌아왔다. 이미 이란의 본선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고 우즈베키스탄과 승점 차가 1점, 시리아와 승점 차가 5점에 불과한 상황이라 한국은 8차전 카타르 원정에서 반드시 이겨야 승점 차이를 벌려 본선 직행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이 경기를 또 제대로 말아먹었고 한국은 3:2로 패배했다. 참으로 운이 좋다면 좋은 게 우즈베키스탄 역시 이란에게 0:2로 패배해 순위는 그대로 2위를 지켰다는 것이다.

결국 여론은 제대로 폭발했고, 대한축구협회 역시 슈틸리케를 감독직에서 전격 경질하고 소방수로 신태용을 선임했다. 8차전까지 A조의 순위는 6승 2무(승점 20점)를 기록한 이란이 남은 경기 결과에 관계 없이 조 1위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고, 뒤이어 4승 1무 3패(승점 13점)의 한국이 조 2위, 4승 4패(승점 12점)의 우즈베키스탄이 조 3위, 2승 3무 3패(승점 9점)의 시리아가 조 4위, 2승 1무 5패(승점 7점)의 카타르가 조 5위, 1승 3무 4패(승점 6점)의 중국이 조 6위였다. 한국이 중국 원정, 카타르 원정에서 승리하기만 했다면 이미 중국과 카타르의 탈락이 확정되었겠지만 둘 다 지는 바람에 저들의 생명줄을 연장해준 것이었다. 9차전 이란과의 홈 경기에서 한국은 반드시 승리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슈틸리케호 시절보다 변화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골 결정력이 여전히 발목을 잡았고, 후반 초반에 상대 선수의 퇴장으로 수적 우세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우즈베키스탄이 중국 원정에서 1:0으로 지는 바람에 여전히 2위 자리를 지켰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 이번에도 지난 대회 예선과 마찬가지로 조기에 본선 진출을 확정짓지 못하고 마지막 경기까지 지켜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조 2위는 승점 14점인 한국이었고, 시리아와 우즈베키스탄이 승점 12점으로 동률이었으나 골득실에서 시리아가 2골 더 앞서서 시리아가 3위로 올라갔고 우즈베키스탄은 4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2위 한국과 승점 차는 2점에 불과해 매우 불안한 2위였다. 그리고 중국이 승점 9점으로 조 5위였는데, 본선 직행은 물 건너갔고 아시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은 남아있었다. 조 최하위는 승점 7점인 카타르인데 카타르는 이미 탈락이 확정되었다. 중국과 카타르를 제외한 나머지 3팀이 모두 본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최종전인 한국 vs 우즈베키스탄, 이란 vs 시리아, 카타르 vs 중국 경기는 사전 담합 및 승부조작 방지를 위해 동시에 치러졌다.

10차전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도 한국은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하며 밀어붙였으나 또 골 결정력 부족 때문에 땅을 쳐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전반 13분에 시리아의 타메르 모하마드가 선제골을 넣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상황은 더욱 절망적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전반 45분에 이란의 사르다르 아즈문이 동점골을 넣으며 다시 희망을 되찾았다. 후반전에도 한국은 계속해서 우즈베키스탄을 몰아붙였으나 좀처럼 우즈베키스탄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같은 시각 후반 19분에 아즈문이 역전골을 터뜨려 한국의 본선 진출이 점점 가시권에 들어왔고, 결국 90분 내내 헛심 공방 끝에 0:0으로 비겼다. 한국의 본선 진출 결과에 영향을 못 주는 카타르 vs 중국 경기는 중국의 2:1 승리로 끝이 나며 카타르의 조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이란 vs 시리아 경기에선 후반전 추가시간 3분에 시리아의 오마르 알 소마가 동점골을 터뜨렸으나 결국 2:2 무승부로 끝이 났다. 그리하여 4승 3무 3패(승점 15점)의 전적으로 간신히 조 2위를 지킨 한국은 1994 미국 월드컵 때와 같이 24년 만에 남의 도움으로 간신히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때는 이라크의 움란 자파르가 한국의 본선 진출을 도왔다면 이번엔 이란의 아즈문이 한국의 본선 진출을 도운 것이다. 이 때문에 신태용호는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다 10월 평가전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수비수 김주영자책골로 멀티골을 기록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 끝에 2:4로 참패했고, 뒤이어 2진이 출전한 모로코를 상대로도 힘 한 번 못 써보고 1:3으로 참패해 국민적 기대가 더욱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러나 11월에 스페인 출신 명코치 토니 그란데가 부임하여 신태용 감독의 전술 구상에 도움을 주면서 다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콜롬비아와의 홈 경기에선 4-4-2 고속버스 축구로 2:1 승리를 거두었고, 세르비아와의 경기에서도 주포 손흥민이 후반전에만 무려 4개의 유효슈팅을 기록했으나 골키퍼의 미친 선방에 막히는 불운을 겪은 끝에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 때문에 조금씩 기대가 올라갔다.[25]

이렇게 다시금 희망이 생기나 싶었으나, 이 희망을 단숨에 다시 꺾어버린 것은 12월에 있었던 조 추첨이었다. 당시 한국은 4포트에 속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 세르비아 → 모로코 → 호주나이지리아파나마 순으로 호명되어 한국과 일본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당시 F조H조가 비어있었는데[26], F조에 속한 팀들은 톱시드 팀이 피파랭킹 1위 & 디펜딩 챔피언 독일, 2시드 팀은 북중미의 강호이자 매 대회마다 꾸준히 16강에 가는 멕시코, 3시드 팀은 북유럽의 다크호스이자 지역예선에서 이탈리아를 탈락시키며 본선에 진출한 스웨덴이었다. 반면 H조에 속한 팀들은 톱시드 팀은 개최국 러시아에 이어 톱시드 팀 중 최약체로 꼽힌 폴란드, 2번 시드 팀은 2002년 대회 이후 16년 만에 본선에 진출해 월드컵 경험이 부족한 세네갈, 3번 시드 팀은 4년 전에 비해 전력에 하락세가 온 데다 남미 팀 중 보기 드물게 한국에게 약세를 보이는 콜롬비아였다.

누가 봐도 F조보다 H조가 훨씬 쉬워 보였기에 한국과 일본은 이때 "니가 가라 F조!"라고 할 정도로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였는데, 얄궂게도 추첨자 파비오 칸나바로가 31번째로 호명한 국가는 한국이 되었다. 이리하여 한국은 독일, 멕시코, 스웨덴과 함께 죽음의 조를 형성해 버리는 불운을 안게 되었다. 진짜 본선 조 추첨까지 운이라고는 더럽게도 없었다. 당연히 한국인들의 반응도 멘붕 그 자체. 한편 일본은 자동으로 폴란드, 세네갈, 콜롬비아와 H조로 들어가면서 한국에 비하면 꿀조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여튼 이런 최악의 조 추첨 결과 때문에 축구 팬들은 일찌감치 '3전 전패'가 유력하다는 소리나 해대며 기대를 접어버렸다.

그나마 12월에 치른 2017 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서 중국과 2:2로 비기고, 북한과의 경기에서도 리영철자책골로 간신히 1:0으로 승리했으나 최종전에서 일본을 4:1로 대파해 7년 만의 한일전 승리이자 63년 만에 일본의 홈에서 4골 3점차 승리를 안겨주면서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하여 또 다시 기대감을 높였다. 그리고 신태용호가 지지리 복도 없는 것이 조 추첨 결과도 결과였지만, 설상가상으로 부상 악령까지 덮쳤다. 주포 손흥민의 봉인을 해제해 줄 이근호, 공격의 만능 키이자 신태용호 전술의 핵심 선수였던 권창훈, 왼발 스페셜리스트로 든든한 조커 역할을 할 염기훈, 주전 레프트백 김진수, 괴물 센터백 김민재까지 줄줄이 부상으로 실려나가며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정말 불운에 또 불운이 겹친 것이다.

이렇게 대표팀 주축 선수들 중에서 절반이 부상으로 아웃되었지, 같은 조의 상대들은 하나같이 빡세지, 평가전 성적들도 매우 실망스러웠지... 이런 식으로 최악의 3중주가 벌어지면서 국민적 기대는 식을 대로 식었는데, 여기에 더해 2018년 당시 정치 상황과 국제 정세도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에 급작스럽게 북한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 제스처에 호응하면서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기 시작해 2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거기에 문재인 정부가 역사상 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대박을 치면서 남북관계북미관계가 급작스럽게 평화 무드로 흘러가는 바람에 국민적 시선은 당연히 그쪽으로 먼저 쏠렸고 월드컵은 상대적으로 후순위가 되어버렸다. 특히 2018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은 2018년 6월 12일로 월드컵 개막 불과 이틀 전이었고, 그 다음 날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 재보궐선거가 열리는 날이었다. 박근혜 탄핵 심판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투표 의지가 적극적인 상황이어서 더욱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식어버렸다. 즉 여러 가지 악재와 외부 상황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겹쳐서 일어나 신태용호는 '대표팀 역사상 가장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한 불운한 대표팀'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27] 그렇게 월드컵을 앞두고 있다는 게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태극전사들은 결전의 땅 러시아로 향했다.

5.1. 32강 조별리그 스웨덴전 - 0 : 1 패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2경기
2018년 6월 18일 월요일 21:00 (대한민국 시각 기준)
[28]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주심: 호엘 아길라르 (엘살바도르)
관중: 42,300명
파일: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 : 0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 블랙.svg
파일:FIFA WORLD CUP 2018 SWE.png 스웨덴 파일:FIFA WORLD CUP 2018 KOR.png 대한민국
65' (PK) 안드레아스 그랑크비스트 파일:득점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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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FIFA WORLD CUP 2018 SWE.png 안드레아스 그랑크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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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32강 조별리그 멕시코전 - 1 : 2 패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3경기
2018년 6월 24일 일요일 00:00 (대한민국 시각 기준)
[29]
로스토프 아레나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주심: 밀로라드 마지치[30] (세르비아)
관중: 43,472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 블랙.svg 1 : 2
파일: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FIFA WORLD CUP 2018 KOR.png 대한민국 파일:FIFA WORLD CUP 2018 MEX.png 멕시코
90+3' 손흥민 (A. 이재성) 파일:득점 아이콘.svg 26' (PK) 카를로스 벨라
66'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A. 이르빙 로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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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FIFA WORLD CUP 2018 MEX.png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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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32강 조별리그 독일전 - 2 : 0 승

파일: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로고_좌우_White.svg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5-1경기
2018년 6월 27일 수요일 23:00 (대한민국 시각 기준)
[31]
아크 바르스 아레나 (러시아, 카잔)
주심: 마크 가이거 (미국)
관중: 41,835명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 블랙.svg 2 : 0 파일:Germany DFB 2018-Away.png
파일:FIFA WORLD CUP 2018 KOR.png 대한민국 파일:FIFA WORLD CUP 2018 GER.png 독일
90+3' 김영권
90+6' 손흥민 (A. 주세종)
파일:득점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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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f the Match: 파일:FIFA WORLD CUP 2018 KOR.png 조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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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32]

세계 1위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상대로 승리하는 기적을 쓴 신태용은 계약 만료로 대표팀을 떠났다. 이후 새로운 대표팀 감독으로는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가 취임했다. 벤투호의 초기는 굉장히 좋았다. 9월 평가전에서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며 순항한 벤투호는 뒤이어 칠레와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10월 평가전에선 8번째 대결 만에 우루과이를 2:1로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11월 평가전에선 호주와 1:1로 비기고 우즈베키스탄을 4:0으로 박살내며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번에야말로 59년 만에 우승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그러나 막상 아시안컵 본선에 들어가니 1차전 필리핀전, 2차전 키르기스스탄전에서는 상대의 밀집 수비를 깨부수는데 상당히 애를 먹으며 겨우겨우 1:0으로 승리하는데 그쳤고 3차전 중국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일단 3전 전승(승점 9점)으로 조 1위를 하긴 했지만 매우 불안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6강에서는 바레인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 신승에 그쳤고, 8강에서는 카타르에게 0:1로 패배하며 15년 만에 4강도 못 가고 탈락(8강 5등)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벤투는 매우 심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후 카타르가 결승에서 일본을 완전히 압도하며 3:1 완승을 거두고 아시안컵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질 만한 상대에게 졌다는 평을 받으며 묻혔다. 벤투도 이 이후로 절치부심하여 4-2-3-1 포메이션을 버리고 다이아몬드 4-4-2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꾀하였고, 볼리비아-콜롬비아 남미 2연전을 모두 승리로 끝냈다. 그리고 호주와 이란을 상대로도 1승 1무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번 대회는 지난 대회와 같은 방식으로 예선전이 치러졌고, 한국은 2차예선에 바로 직행했다. 2차예선 상대는 레바논, 투르크메니스탄, 북한, 스리랑카로, 한국은 이들과 함께 H조에 속했다.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 원정에서 한국은 4-1-4-1 포메이션과 4-1-3-2 포메이션을 혼용하며 상대를 압도했다가 후반전에 오히려 날카로운 역습을 몇 차례 허용하는 등 고전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밀집 수비에 애를 먹으며 전반 13분에 터진 나상호의 선제골, 후반 42분에 터진 정우영프리킥 골로 0:2 승리를 거두며 내용적으로는 불만족스러웠으나 결과적으론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2차전 스리랑카와의 홈 경기에서는 김신욱이 무려 4골을 뽑아내고 손흥민이 2골을 기록하며 8:0으로 대승을 거뒀다.

3차전은 북한 원정이었는데, 12년 전과는 달리 이번엔 정상적으로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치러졌다. 그러나 이 시기 남북관계는 다시 냉랭하게 변했고, 북한은 선수단 이외의 자국 입국과 경기 생중계를 불허했다. 그리고 자체 무관중 경기를 진행하는 상식 밖의 모습을 보였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은 0:0 무승부를 기록해 조 1위 자리를 지켰다. 4차전 레바논 원정에서도 일이 꼬였다. 레바논 현지의 혼란한 상황으로 대표팀은 레바논 입국을 최대한 연기했고, 결국 당일 무관중 경기로 진행이 되었다. 열악한 필드와 컨트롤이 안 되는 공인구[33], 그리고 심신의 피로가 역력해 보이던 대표팀은 시종일관 졸전을 펼친 끝에 0:0 무승부를 거뒀다. 다음 날 투르크메니스탄이 북한을 이겨 승점 9점이 되어 조 2위로 밀려났다. 이로써 투르크메니스탄 9점-대한민국 8점-레바논 8점-북한 8점으로 대혼전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다행이라 할 만한 점은 레바논, 북한 원정을 패배 없이 넘겼다는 점이었다.[34]

그리고 2020년에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전 대륙 모두 예선 일정이 올스톱되었고, 그렇게 1년 간 예선을 치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21년 6월에 잔여 경기들을 한꺼번에 몰빵해서 치르게 되었는데, AFC는 그나마 코로나바이러스 통제가 가능한 나라 몇 개를 선정하여 그 나라에서 잔여 경기를 소화하도록 조치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이 속한 H조는 대한민국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잔여 경기들을 다 치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와중에 북한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이유로 기권을 선언하며 잔여 경기에 불참했고, 이로 인해 북한의 경기 결과들은 모두 무효로 처리되었다. 이 북한발 유탄으로 인해 조 1위를 달리고 있던 투르크메니스탄은 3위로 추락하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조 1위로 오르는 반사 이익을 얻었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1위 투르크메니스탄은 3승 2패(승점 9점)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스리랑카를 상대로 2승, 북한을 상대로 1승을 거두었다. 2위 대한민국은 2승 2무(승점 8점)를 기록했는데 각각 투르크메니스탄, 스리랑카를 상대로 승리를 기록했다. 3위 레바논은 2승 2무 1패(승점 8점)를 기록했는데 역시 투르크메니스탄과 스리랑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대한민국은 북한을 상대로 1무, 레바논 역시 북한을 상대로 1무 1패를 기록했다. 반면 투르크메니스탄은 북한을 상대로 1승을 거둔 상태였다. 그런데 북한의 난데없는 불참 선언으로 경기 결과가 무효가 되어버리면서 투르크메니스탄은 승점이 3점이나 깎여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과 레바논은 2승 1무(승점 7점)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에 앞서서 대한민국이 1위, 레바논이 2위가 되었다.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은 2승 2패(승점 6점)가 되어 3위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4차전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대한민국은 황의조의 멀티골과 남태희, 김영권, 권창훈의 릴레이 골에 힘입어 5:0 대승을 거두며 3승 1무(승점 10점)로 조 1위를 굳혔다. 그리고 같은 날에 레바논이 스리랑카에게 3:2로 승리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은 1경기 남은 시점에서 2위 레바논과 승점이 4점 차로 벌어졌기에 탈락이 확정되었다. 나흘 후에 치러진 5차전 스리랑카전에서 대한민국은 모처럼 대표팀에 복귀한 김신욱의 멀티골과 이동경, 황희찬, 정상빈의 릴레이 골로 5:0 대승을 거둔 반면, 같은 날 투르크메니스탄과 경기를 치른 레바논은 뜻밖에도 2:3으로 덜미를 잡혔다.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4승 1무(승점 13점)의 전적으로 2위 레바논과 승점 차를 3점으로 벌렸다. 마지막 6차전 레바논전에서는 선제골을 내주며 불리한 경기를 했으나 마헤르 사브라의 자책골과 손흥민의 페널티킥 골에 힘입어 2:1 역전승을 거두며 5승 1무(승점 16점)로 조 1위를 지켜 최종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레바논전은 대한민국을 괴롭히던 침대 축구를 피지컬 어택이 아닌 전술적으로 뚫어내는 소득을 보인지라 최종예선에서 싸울 중동 팀의 침대 축구를 이겨내기 위한 모의고사를 통과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종예선에서 대한민국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예선부터 3연속으로 만나며 악연을 쌓은 이란과 또 다시 찰떡같이 재회하며 4연속으로 만나는 악연을 쌓게 되었다. 그 밖에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레바논, 시리아와 함께 A조에 편성되었는데, 대한민국을 제외한 모든 팀들이 중동 팀들인 참으로 불리하고 난감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속담에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했던가? 라이벌인 일본은 다소 약체에 속하는 중국, 베트남 등이 있는 B조에 속해 한국인들은 부러우면서도 "일본 쟤들은 맨날 해볼 만한 조에 들어가!"라며 잔뜩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일정상 대한민국은 초반 3연전을 모두 홈에서 치르게 되었다.[35] 2021년 9월부터 최종예선이 시작되었는데, 1차전 상대는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이자 15년 전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딕 아드보카트가 이끄는 이라크였다. 첫 경기라 긴장한데다 대표팀 주축인 유럽파 선수들이 늦게 합류하여 손발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던 탓에 대한민국은 이라크의 끈적한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하며 좀처럼 상대의 의표를 찌르지 못했다. 믿었던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도 모두 하나같이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홈 3연전에서 3승을 쓸어담는 것이 한국의 목표였는데 초장부터 꼬이게 된 것이다. 거기다 이날 이라크는 전매특허인 침대 축구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벤투의 용병술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2차전 레바논과의 홈 경기에서는 이라크전보다는 좀 더 나아지긴 했지만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이 심각하게 나빴다. 결국 전반전을 득점 없이 비긴 후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권창훈이 결승골을 터뜨리며 1:0으로 간신히 승리했다. 9월 경기까지 순위는 이란이 2승(승점 6점)으로 조 1위, 대한민국이 1승 1무(승점 4점)로 2위, 아랍에미리트가 2무(승점 2점)로 3위,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가 1무 1패(승점 1점)로 동률을 이뤘으나 시리아와 레바논의 골득실이 -1, 이라크가 -3이었기에 이라크가 6위로 처졌고 시리아와 레바논은 다득점 결과 시리아가 더 앞섰기에 시리아가 4위, 레바논이 5위가 되었다. 그리하여 예상대로 A조의 판세는 대한민국과 이란이 선두권에 안착하며 본선을 향해 노를 저었다.

3차전 시리아와의 홈 경기에서 벤투는 9월에 지적된 전술 문제점을 시인하고 보다 빠른 템포로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 골 결정력이 발목을 잡았다. 전반전에 10개나 되는 슈팅을 날리고도 대표팀은 좀처럼 골을 넣지 못했고, 심지어 그 10개의 슈팅 중 유효슈팅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시리아가 단 1개의 슈팅을 날렸는데 그게 유효슈팅이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0:0으로 경기를 마쳤다. 후반전에 대한민국은 시리아를 상대로 다시 공격적으로 나섰고, 마침내 후반 4분에 황인범이 왼발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앞서갔다. 한국은 추가골을 넣으려고 기를 썼지만 전반전 내내 똥볼만 줄창 날리며 형편없는 골 결정력을 보인 황희찬, 폼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한 황의조 등 공격수들이 연달아 찬스를 놓쳤다. 골을 넣어야 할 때 골을 못 넣었던 대가는 정말 참혹했다. 후반 38분 오마르 하르빈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한국은 이란과 승점 차이가 크게 벌어지게 되어 순위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될 소지가 있었다. 이렇게 위기에 몰렸을 때 해결사로 나선 선수는 바로 에이스이자 주장인 손흥민이었다. 후반 43분, 시리아의 반칙으로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홍철이 전방으로 볼을 띄웠고, 그걸 김민재가 헤더로 떨구었다. 그 떨어진 볼을 손흥민이 캐치해 잽싸게 밀어넣으며 결승골을 터뜨려 극적인 2:1 승리를 거두었다.

4차전은 지긋지긋하고 악명 높은 아자디 징크스로 유명한 이란 원정이었다. 만약 이 경기에서 한국이 승리를 거두면 순위 역전이 가능했다. 전반전은 득점 없이 마쳤으나, 후반전 3분에 이재성이 중원에서 배후 공간을 찌르는 킬 패스를 넣었고 그걸 손흥민이 절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며 받았다. 준족으로 유명한 손흥민은 특유의 빠른 스피드로 배후 공간을 침투하여 골키퍼와 1:1 상황을 맞았고,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한국은 0:1로 앞서갔다. 무려 44년 만에 이란 원정에서 넣은 선제골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아자디 징크스를 깨는 듯했으나, 후반 17분부터 이란의 대반격이 시작되며 한국은 이란의 맹공에 정신없이 난타당했다. 이렇게 난타당하던 중 후반 31분, 이재성이 치명적인 실책으로 볼을 빼앗긴 후 이란의 역습으로 이어졌고 사르다르 아즈문이 우측에서 느리게 달리는 페인트에 김승규는 공이 나갈 거라고 예상했는지 왼쪽 측면에서 아즈문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내버려 뒀다. 하지만 아즈문이 나가기 직전에 갑자기 쇄도하고 날린 크로스에 알리레자 자한바크슈가 헤더로 동점골을 넣으며 다시 1:1 원점으로 돌아갔다. 경기 종료 직전에 나상호가 끝내기 슛을 시도했으나 알리레자 베이란반드의 선방에 막히며 결국 1:1 무승부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10월 경기가 끝난 후 순위는 이란이 3승 1무(승점 10점)로 조 1위를 유지했고, 대한민국 역시 2승 2무(승점 8점)로 2위를 유지했다. 뒤이어 1승 2무 1패(승점 5점)를 기록한 레바논이 3위, 3무 1패(승점 3점)로 동률을 기록했으나 골득실에서 앞선 아랍에미리트가 4위, 이라크가 5위를 기록했으며 1무 3패(승점 1점)에 그친 시리아가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5차전은 8년 만에 월드컵 예선에서 재회한 아랍에미리트와의 홈 경기였다. 경기를 앞두고 황의조와 김영권이 부상으로 빠지게 된 데다 아랍에미리트의 감독이 아시아 축구에 해박한 네덜란드 출신 명장 베르트 판마르베이크여서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대한민국은 초반부터 아랍에미리트에게 강한 전방 압박을 걸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골 결정력이 이번에도 문제였다. 손흥민과 조규성이 여러 차례 좋은 슈팅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골대 불운에 막히며 좀처럼 아랍에미리트의 골문을 열지 못했고, 전반 36분 황인범이 상대 선수의 파울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황희찬이 성공시킨 덕에 1:0으로 승리하는 것에 그쳤다. 1시간 뒤에 열린 레바논 vs 이란 경기에서 레바논이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갔기에 순위 역전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후반 추가시간에 이란이 몰아치기로 2골을 넣어 역전승을 거두는 바람에 이번에도 순위 역전은 실패했다. 반환점을 돌 당시 순위는 이란이 4승 1무(승점 13점)로 1위, 대한민국이 3승 2무(승점 11점)로 2위를 차지해 양강 체제를 굳혔으며, 레바논이 1승 2무 2패(승점 5점)로 3위, 이라크가 4무 1패(승점 4점)로 4위, 아랍에미리트가 3무 2패(승점 3점)로 5위, 시리아가 2무 3패(승점 2점)로 최하위를 차지했다.

6차전은 중동 원정 3연전 중 첫 번째인 이라크 원정이었다. 당초 이 경기는 이라크 바스라에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이라크 현지 사정이 좋지 못해 중립 지역인 카타르 도하에서 치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한국 선수들은 초반엔 몸이 무거웠는지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조규성과 손흥민의 중거리 슛을 계기로 다시 주도권을 되찾으며 일방적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그리고 전반 33분, 우측에서 손흥민이 올린 크로스가 김진수의 몸에 맞고 흘렀고 그걸 이재성이 잽싸게 왼발로 밀어넣어 0:1로 앞서갔다. 선제골 이후 양 팀은 더욱 치열하게 격돌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후반 24분, 이라크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알리 아드난이 조규성에게 거친 파울을 범해 한국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이걸 손흥민이 성공시키며 스코어를 0:2로 벌렸다. 그리고 5분 후에 손흥민과 황희찬의 도움을 받은 막내 작은 정우영이 쐐기골을 넣으며 0:3 대승을 거두었다. 같은 날 이란은 시리아 원정에서 0:3 대승을 거두었고, 아랍에미리트 또한 레바논 원정에서 0:1 신승을 거두며 첫 승을 신고했다. 이로서 A조 순위는 이란이 5승 1무(승점 16점)로 1위, 대한민국이 4승 2무(승점 14점)으로 2위를 기록해 1승 3무 2패(승점 6점)에 그친 3위 아랍에미리트를 각각 승점 10점, 8점 차로 따돌리며 양강 체제를 굳혔다. 뒤이어 1승 2무 3패(승점 5점)인 레바논이 4위, 4무 2패(승점 4점)의 이라크가 5위, 2무 4패(승점 2점)인 시리아가 최하위에 머물렀다.

해가 바뀌어 2022년이 되었다. 새해를 맞아 대표팀은 터키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한국은 터키에서 아이슬란드, 몰도바 등과 평가전을 치렀는데, 주전 선수들이 대거 빠지고 K리거들 위주로 편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를 무려 5:1로 대파하였고, 뒤이어 몰도바도 4:0으로 대파하며 2전 전승으로 평가전을 마쳤다. 그리고 1월 27일에 7차전 레바논 원정을 치르게 되었다. 만약 이 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하고, 동시에 아랍에미리트가 시리아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하면 3경기 남은 시점에서 승점 차가 최소 10점으로 벌어지기에 한국의 본선 진출이 확정된다. 한국은 초반부터 레바논을 강하게 몰아붙였지만 경기장의 열악한 잔디 상태, 심판의 불리한 판정 등이 영향을 미치며 어려운 경기를 했다. 그러나 전반전 종료 직전에 황의조의 크로스를 받은 조규성이 결승골을 터뜨려 0:1 승리를 거두며 승점 3점을 추가했다. 하지만 같은 날 아랍에미리트가 시리아를 2:0으로 이겨서 본선 진출은 확정짓지 못했다. 반면 이란은 이라크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어 3위 아랍에미리트와 승점 차를 10점으로 벌려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서 A조 순위는 이란이 6승 1무(승점 19점)로 1위, 대한민국이 5승 2무(승점 17점)로 2위를 기록했으며 아랍에미리트가 2승 3무 2패(승점 9점)로 3위, 레바논이 1승 2무 4패(승점 5점)로 4위, 4무 3패(승점 4점)인 이라크가 5위, 마지막으로 2무 5패(승점 2점)인 시리아가 최하위였다. 3경기 남은 시점에서 이라크는 2위 대한민국과 승점 차가 13점, 시리아는 15점으로 벌어졌기에 본선 직행 실패가 확정되었다.

8차전은 시리아 원정이었다. 현재 시리아의 국내 사정이 상당히 열악하기에 경기는 중립 지역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경기 전 홍철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김민재가 장염으로 훈련에 빠지는 등 여러 불길한 징조가 나왔으나 다행히 추가 확진자는 없었고, 김민재 또한 경기 이틀 전에 회복하는데 성공하면서 공백을 최소화했다. 전반전에는 뭔가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과 시리아가 의외로 강한 압박으로 나와서 유효슈팅을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하마터면 실점할 뻔한 사례가 2번이나 나왔다. 그러나 후반전 들어 작은 정우영을 빼고 권창훈을 투입한 효과를 보았다. 후반 7분에 우측 풀백 김태환이 올린 크로스를 좌측 풀백 김진수가 받아 헤더로 선제골을 터뜨리며 0:1로 앞서갔다. 그 이후로는 완전히 대한민국의 페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후반 25분에 권창훈이 쐐기골을 넣으며 0:2 완승을 거두었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6승 2무로 승점 20점을 기록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 이래로 아시아 최초로 10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8차전 종료 후 순위는 이란이 7승 1무(승점 22점)로 1위, 대한민국이 6승 2무(승점 20점)로 2위를 기록하며 모두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가 2승 3무 3패(승점 9점)로 3위, 레바논이 1승 3무 4패(승점 6점)로 4위, 이라크가 5무 3패(승점 5점)로 5위를 기록했으며, 오늘 패배한 시리아는 2무 6패(승점 2점)를 기록하며 남은 2경기와 무관하게 조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오랜만에 시원시원하고 편안하게 치른 예선이었다.

9차전 이란과의 홈 경기에서는 손흥민의 날카로운 중거리 슛을 통한 선제골과 김영권의 추가골로 11년 만에 이란을 2:0으로 꺾고 조 1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최종전인 10차전 아랍에미리트 원정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졸전 끝에 1:0으로 패해 무패 달성에 실패하며 옥에 티를 남겼다. 최종 결과 이란이 레바논을 2:0으로 꺾고 다시 8승 1무 1패(승점 25점)로 조 1위가 확정되었고, 대한민국이 뒤를 이어 7승 2무 1패(승점 23점)로 조 2위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UAE전이 끝나고 며칠 뒤인 4월 1일, 카타르에서 진행된 조 추첨에서 대한민국은 포트 3에 속했다. 포트 3에 속한 팀은 이란[36]세네갈폴란드세르비아[37]튀니지 순으로 호명되어 대한민국, 일본, 모로코 3팀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남은 조는 E조, F조, H조였다. 그런데 E조엔 포트 1에서 스페인이 걸렸고, 포트 2에선 모든 팀들이 피하고 싶어 했던 독일이 있어 사실상 톱시드가 2팀인 조였다. E조 추첨 차례가 되자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한국과 일본 양국 축구팬 모두 "니가 가라 E조!"를 마음 속으로 읊조렸다. 이번엔 한국이 웃었다. 포트 3 추첨자 아델 아흐메드 말알라가 일본을 호명하면서 일본이 E조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 F조엔 모로코가 들어갔고, 마지막까지 남은 대한민국은 자동으로 포르투갈, 우루과이가 먼저 들어가 있었던 H조에 속했고, 이어 32번째 빈 자리는 가나가 들어오게 되면서 최악은 피했으나 그렇다고 최상도 아닌 조 편성을 받았다. 아울러서 이 결과로 벤투는 조국과 맞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는 참 얄궂은 운명을 받게 되었다.

이후 잇단 평가전들에서 다소 부진하고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것도 모자라 다른 나라들은 부지런히 유럽, 중동 전지 훈련을 잡는 동안 홈에서만 평가전을 잡는 대한축구협회무능한 모습에 축빠들의 기대치는 점점 낮아졌다. 거기에 더해 월드컵이 개막하기 약 한 달 전인 10월 29일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할로윈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이 압사로 대거 숨진 이태원 압사 사고 발발로 인해 월드컵에 대한 열기가 식었다. 그것만으로도 뼈아픈데 팀 내 에이스이자 주장인 손흥민의 안와골절 부상, 김진수의 부상 등으로 인해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출전은 할 수 있게 되었고, 기대 반 의심 반을 가진 채 대표팀은 카타르로 떠났다.

6.1. 32강 조별리그 우루과이전 - 0 : 0 무

파일: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로고_좌우_White.svg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H조 1경기
2022년 11월 24일 목요일 22:00 (대한민국 시각 기준)
[38]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카타르, 알라이얀)
주심: 클레망 튀르팽 (프랑스)
관중: 41,663명
파일: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0 : 0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빨간색 로고.svg
파일:2022 FIFA 월드컵 우루과이 아이콘.svg 우루과이 파일:2022 FIFA 월드컵 대한민국 아이콘.svg 대한민국
<rowcolor=#000000,#dddddd> - 파일:득점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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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of the Match: 파일:2022 FIFA 월드컵 우루과이 아이콘.svg 페데리코 발베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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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32강 조별리그 가나전 - 2 : 3 패

파일: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로고_좌우_White.svg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H조 3경기
2022년 11월 28일 월요일 22:00 (대한민국 시각 기준)
[39]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카타르, 알라이얀)
주심: 앤서니 테일러 (잉글랜드)
관중: 43,983명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빨간색 로고.svg
2 : 3
파일: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2022 FIFA 월드컵 대한민국 아이콘.svg 대한민국 파일:2022 FIFA 월드컵 가나 아이콘.svg 가나
<rowcolor=#000000,#dddddd> 58' 조규성 (A. 이강인)
61' 조규성 (A. 김진수)
파일:득점 아이콘.svg 24' 무함마드 살리수
34' 모하메드 쿠두스 (A. 조던 아이유)
68' 모하메드 쿠두스 (A. 이냐키 윌리암스)
<rowcolor=#000000,#dddddd> 90+11' 파울루 벤투[40]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파일:퇴장 카드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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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of the Match: 파일:2022 FIFA 월드컵 가나 아이콘.svg 모하메드 쿠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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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32강 조별리그 포르투갈전 - 2 : 1 승

파일: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로고_좌우_White.svg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H조 5-1경기
2022년 12월 3일 토요일 00:00 (대한민국 시각 기준)
[41]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카타르, 알라이얀)
주심: 파쿤도 테요 (아르헨티나)
관중: 44,097명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빨간색 로고.svg
2 : 1
파일: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2022 FIFA 월드컵 대한민국 아이콘.svg 대한민국 파일:2022 FIFA 월드컵 포르투갈 아이콘.svg 포르투갈
<rowcolor=#000000,#dddddd> 27' 김영권
90+1' 황희찬 (A. 손흥민)
파일:득점 아이콘.svg 5' 히카르두 오르타 (A. 디오구 달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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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of the Match: 파일:2022 FIFA 월드컵 대한민국 아이콘.svg 황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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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16강 브라질전 - 1 : 4 패

파일: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로고_좌우_White.svg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16강 6경기
2022년 12월 6일 화요일 04:00 (대한민국 시각 기준)
[42]
스타디움 974 (카타르, 도하)
주심: 클레망 튀르팽 (프랑스)
관중: 43,94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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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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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22 FIFA 월드컵 브라질 아이콘.svg 브라질 파일:2022 FIFA 월드컵 대한민국 아이콘.svg 대한민국
<rowcolor=#000000,#dddddd> 7'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A. 네이마르 주니오르)
13' (PK) 네이마르 주니오르
29' 히샬리송 (A. 티아고 실바)
36' 루카스 파케타 (A.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파일:득점 아이콘.svg 76' 백승호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Player of the Match: 파일:2022 FIFA 월드컵 브라질 아이콘.svg 네이마르 주니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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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둘러보기

7.1. 나라별 국가대표팀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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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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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49-1956).svg (1954)
vs 헝가리 0:9 패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1954)
vs 터키 0:7 패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198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아르헨티나 1:3 패
파일: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국기(1971–1990).svg (198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불가리아 1:1 무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8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이탈리아 2:3 패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파일:벨기에 국기.svg (1990)
vs 벨기에 0:2 패
파일:스페인 국기.svg (1990)
vs 스페인 1:3 패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1990)
vs 우루과이 0:1 패
1994 FIFA 월드컵 미국
파일:스페인 국기.svg (199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스페인 2:2 무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199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볼리비아 0:0 무
파일:독일 국기.svg (199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독일 2:3 패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파일:멕시코 국기.svg (199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멕시코 1:3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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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네덜란드 0:5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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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벨기에 1:1 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파일:폴란드 국기.svg (200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폴란드 2:0 승
파일:미국 국기.svg (200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미국 1:1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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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포르투갈 1:0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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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이탈리아 2:1 (연장) 승
파일:스페인 국기.svg (200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스페인 0:0 무
(PSO 5:3 승)
파일:독일 국기.svg (200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독일 0:1 패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200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터키 2:3 패
2006 FIFA 월드컵 독일
파일:토고 국기.svg (200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토고 2:1 승
파일:프랑스 국기.svg (200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프랑스 1:1 무
파일:스위스 국기.svg (200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스위스 0:2 패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파일:그리스 국기.svg (2010)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그리스 2:0 승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10)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아르헨티나 1:4 패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2010)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나이지리아 2:2 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2010)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우루과이 1:2 패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파일:러시아 국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러시아 1:1 무
파일:알제리 국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알제리 2:4 패
파일:벨기에 국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벨기에 0:1 패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파일:스웨덴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스웨덴 0:1 패
파일:멕시코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멕시코 1:2 패
파일:독일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독일 2:0 승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202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우루과이 0:0 무
파일:가나 국기.svg (202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가나 2:3 패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202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포르투갈 2:1 승
파일:브라질 국기.svg (202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브라질 1:4 패
2026 FIFA 월드컵
파일:국기.svg (202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국가 -:-
파일:멕시코 국기.svg (202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멕시코 -:-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202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남아프리카 공화국 -:-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1996)
vs 아랍에미리트 1:1 무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1996)
vs 인도네시아 4:2 승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1996)
vs 쿠웨이트 0:2 패
파일:이란 국기.svg (199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이란 2:6 패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07)
vs 사우디아라비아 1:1 무
파일:바레인 국기.svg (2007)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바레인 1:2 패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2007)
vs 인도네시아 1:0 승
파일:이란 국기.svg (2007)
vs 이란 0:0 무
(PSO 4:2 승)
파일:이라크 국기.svg (2007)
vs 이라크 0:0 무
(PSO 3:4 패)
파일:일본 국기.svg (2007)
vs 일본 0:0 무
(PSO 6:5 승)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파일:바레인 국기.svg (2011)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바레인 2:1 승
파일:호주 국기.svg (2011)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호주 1:1 무
파일:인도 국기.svg (2011)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인도 4:1 승
파일:이란 국기.svg (2011)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이란 1:0 (연장) 승
파일:일본 국기.svg (2011)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2:2 무
(PSO 0:3 패)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11)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우즈베키스탄 3:2 승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파일:오만 국기.svg (2015)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오만 1:0 승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2015)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쿠웨이트 1:0 승
파일:호주 국기.svg (2015)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호주 1:0 승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15)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우즈베키스탄 2:0 (연장) 승
파일:이라크 국기.svg (2015)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이라크 2:0 승
파일:호주 국기.svg (2015)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호주 1:2 (연장) 패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파일:필리핀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필리핀 1:0 승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키르기스스탄 1:0 승
파일:중국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중국 2:0 승
파일:바레인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바레인 2:1 (연장) 승
파일:카타르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카타르 0:1 패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파일:바레인 국기.svg (202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바레인 3:1 승
파일:요르단 국기.svg (202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요르단 2:2 무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202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말레이시아 3:3 무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2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사우디아라비아 1:1 무
(PSO 4:2 승)
파일:호주 국기.svg (202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호주 2:1 (연장) 승
파일:요르단 국기.svg (202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요르단 0:2 패
기타 경기
파일:일본 국기.svg (1997)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2:1 승
파일:태국 국기.svg (199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태국 1:2 (연장) 패
파일:브라질 국기.svg (1999)
vs 브라질 1:0 승
파일:브라질 국기.svg (200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브라질 2:3 패
파일:오만 국기.svg (200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오만 1:3 패
파일:몰디브 국기.svg (200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몰디브 0:0 무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2004)
vs 터키 2:1 승
파일:독일 국기.svg (2004)
vs 독일 3:1 승
파일:중국 국기.svg (2010)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중국 0:3 패
파일:일본 국기.svg (2011)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0:3 패
파일:중국 국기.svg (2017)
vs 중국 0:1 패
파일:카타르 국기.svg (2017)
vs 카타르 2:3 패
파일:일본 국기.svg (2017)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4:1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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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연령별 대표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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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23f3f>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말레이시아 3:0 승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사우디아라비아 1:0 승
파일:라오스 국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라오스 2:0 승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홍콩 3:0 승
파일:일본 국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1:0 승
파일:태국 국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태국 2:0 승
파일:북한 국기.svg (201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북한 1:0 (연장) 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파일:바레인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바레인 6:0 승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말레이시아 1:2 패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키르기스스탄 1:0 승
파일:이란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이란 2:0 승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우즈베키스탄 4:3 (연장) 승
파일:베트남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베트남 3:1 승
파일:일본 국기.svg (2018)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2:1 (연장) 승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쿠웨이트 9:0 승
파일:태국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태국 4:0 승
파일:바레인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바레인 3:0 승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키르기스스탄 5:1 승
파일:중국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중국 2:0 승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우즈베키스탄 2:1 승
파일:일본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2:1 승
2017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파일:기니 국기.svg (2017)
vs 기니 3:0 승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17)
vs 아르헨티나 2:1 승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017)
vs 잉글랜드 0:1 패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2017)
vs 포르투갈 1:3 패
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2019)
vs 포르투갈 0:1 패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2019)
vs 남아프리카 공화국 1:0 승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19)
vs 아르헨티나 2:1 승
파일:일본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1:0 승
파일:세네갈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세네갈 3:3 무
(PSO 3:2 승)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에콰도르 1:0 승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2019)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우크라이나 1:3 패
2023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
파일:프랑스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프랑스 2:1 승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온두라스 2:2 무
파일:감비아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감비아 0:0 무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에콰도르 3:2 승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나이지리아 1:0 (연장) 승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이탈리아 1:2 패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이스라엘 1:3 패
U-17 대표팀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5)
vs 브라질 1:0 승
기타 경기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2003)
vs 네덜란드 1:0 승
파일:일본 국기.svg (2012)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2:0 승
파일:일본 국기.svg (2016)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일본 2:3 패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2021)
vs 뉴질랜드 0:1 패
파일:멕시코 국기.svg (2021)
vs 멕시코 3:6 패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2024)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인도네시아 2:2 무
(PSO 10:11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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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여자 대표팀 ]
{{{#!wiki style="margin:-5px 0 -10px"
2015 FIFA 여자 월드컵 캐나다
파일:브라질 국기.svg (2015)
vs 브라질 0:2 패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2015)
vs 코스타리카 2:2 무
파일:스페인 국기.svg (2015)
vs 스페인 2:1 승
파일:프랑스 국기.svg (2015)
vs 프랑스 0:3 패
2019 FIFA 여자 월드컵 프랑스
파일:프랑스 국기.svg (2019)
vs 프랑스 0:4 패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2019)
vs 나이지리아 0:2 패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2019)
vs 노르웨이 1:2 패
2023 FIFA 여자 월드컵 호주·뉴질랜드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콜롬비아 0:2 패
파일:모로코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모로코 0:1 패
파일:독일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독일 1:1 무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여자 축구
파일:미얀마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미얀마 3:0 승
파일:필리핀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필리핀 5:1 승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홍콩 5:0 승
파일:북한 국기.svg (2023)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vs 북한 1:4 패
U-17 대표팀
파일:일본 국기.svg (2010)
vs 일본 3:3 무
(PSO 5:4 승)
기타 경기
파일:북한 국기.svg (2017)
vs 북한 1:1 무
파일:중국 국기.svg (2022)
vs 중국 2:3 패
}}}}}}}}}}}}
파일:나무위키:로고2.svg: 독립 문서로 등재

7.2. 감독별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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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2001~2002
전체 (2001200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폴란드전 · 미국전 · 포르투갈전 · 이탈리아전 · 스페인전 · 독일전 · 터키전)
친선 경기 (브라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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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월드컵 독일 (토고전 · 프랑스전 · 스위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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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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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전 · 아르헨티나전 · 나이지리아전 · 우루과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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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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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러시아전 · 알제리전 · 벨기에전)
논란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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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3
2015~2016
전체 (20152016)
U-20
2016~2017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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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1 챔피언십 (일본전)2018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전 · 멕시코전 · 독일전)
선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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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2018~2022
20182019202020212022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필리핀전 · 키르기스스탄전 · 중국전 · 바레인전 · 카타르전)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2022 EAFF E-1 풋볼 챔피언십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우루과이전 · 가나전 · 포르투갈전 · 브라질전)
선임 과정국대: 로드 투 카타르알빠임?2701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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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위(3승 2무 2패, 승부차기전 포함 시 4승)[2] 대한민국의 키커 5명은 우연일수도 있지만 키커 5명 전원이 모두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넣은 경험이 있는 선수들로 선정되었으며, 이 중 홍명보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이 대회에서 이미 득점을 기록했던 선수들이다.[3] 이케르 카시야스의 옆구리를 스치고 골라인 통과.[4] 정확하게는[5] 17위(승점 4점 1승 1무 1패).[6] 이 남미 2연전 당시 얼마나 분위기가 가라앉았던지 기초군사훈련 중이던 안정환까지 국방부에 협조를 구해 대표팀에 급하게 차출시켰을 정도였다.[7] 대한민국 시간으로 2006년 6월 19일 월요일 새벽 4시.[8]레드불 아레나.[9] 15위(승점 4점 1승 1무 2패).[10] 자세히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베어벡을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했을 정도로 싫어했던 조광래가 이 같은 선수 차출 거부를 주도했다는 설이 있다.[11] 이것이 이운재의 A대표팀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패배한 승부차기였다.[12] 당시 베어벡은 국대와 U-23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사퇴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두 자리가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위원회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늑장을 부렸다가 결국 외국인 후보들에게 모두 까였고 부랴부랴 당시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있던 허정무와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있던 박성화를 각각 국대, 올대 감독으로 빼앗아갔다. 특히 박성화는 부산 감독으로 선임된 지 불과 17일 만에 올대 감독으로 갔다.[13] 본래 북한 원정 경기는 평양에서 열려야 했으나, 당시는 남북관계가 극악이었던 이명박 정부 시절이라 북한 측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입국을 거부했고 결국 대한민국 VS 북한의 경기 중 북한의 홈 경기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다. 다만 대한민국의 홈 경기는 그대로 서울특별시에서 열렸고, 인공기도 게양되었고 북한 애국가도 정상적으로 연주되었다.[14] 27위(승점 1점 1무 2패).[15]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첫 16강 진출은 일본을 이기고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16개국 본선에 진출(월드컵 16위)로 이미 한 번 달성한 바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틀린 표현이다.[16] 대한민국과 일본의 승점은 7차전까지는 14점으로 동일했다. 다만 한국의 조는 이란과 우즈베키스탄도 차곡차곡 승점을 쌓아 끝까지 경쟁해야 했지만, 일본의 조는 이상하게 호주가 비실거려서 전혀 견제를 못해줬기에 승점이 같았어도 극과 극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또 일본이 컨페드컵 참가를 이유로 자청해서 경기를 먼저 치르는 5번 슬롯으로 배정받은 것도 한몫했다.[17] 특히 월드컵 전 최종 평가전에서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도 못한 튀니지를 상대로 0 : 1 패, 그리고 가나를 상대로 0 : 4 완패를 당하며 기대치를 바닥까지 깔아버렸다. 심지어 튀니지전은 원정도 아니었고 홈 경기였다.[18] 대한민국 시각 기준 2014년 6월 18일 수요일 07:00.[19] 대한민국 시각 기준 2014년 6월 23일 월요일 04:00.[20] 대한민국 시각 기준 2014년 6월 27일 금요일 05:00.[21] 19위(승점 3점 1승 2패).[22] 당시 미얀마의 국내 사정이 좋지 못해 경기는 태국에서 치렀다.[23] 그나마 한국은 이기기라도 했지만 당시 일본은 홈에서 치른 싱가포르와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24] 당시 시리아가 내전 중이어서 안전을 위해 경기는 말레이시아에서 치러졌다.[25] 하지만 신태용 감독에 대한 불신은 여전했는데, 사대주의에 찌들 대로 찌들었던 한국 축구 팬들은 신태용 감독의 공로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토니 그란데 감독' 덕분이라고 할 정도였다.[26] 30번째로 호명된 국가는 파나마였는데, 순서대로라면 파나마가 F조로 가야 하겠지만 F조에는 같은 대륙(북중미카리브)의 멕시코가 있었던 데다가 대륙별 안배 원칙에 따라서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들은 같은 대륙 국가들끼리는 한 조가 될 수가 없다는 방식 때문에 거기로는 갈 수가 없었고, 대신 G조로 가서 벨기에, 튀니지, 잉글랜드와 한 조를 형성하게 되었다.[27] 이때 분위기는 전 월드컵의 홍명보호 1기 그 이상으로 쌀쌀맞았으며, 대한민국 전체가 신태용호의 적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28] 현지 시각 기준 2018년 6월 18일 월요일 15:00.[29] 현지 시각 기준 2018년 6월 23일 토요일 18:00.[30]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페페를 퇴장시킨 인물이다.[31] 현지 시각 기준 2018년 6월 27일 수요일 17:00.[32] 16위(승점 4점 1승 1무 2패).[33] 예선전 공인구는 FIFA에서 정하는 게 아니라 경기 당사국에서 결정한다.[34] 2020년 2차예선 원정은 스리랑카밖에 없었다.[35] 2차전은 본래 레바논 원정 경기였으나 레바논의 국내 사정이 어지러운 탓에 레바논과의 합의로 홈, 원정 일정을 서로 교환하였다.[36] A조에는 같은 아시아 팀인 카타르가 개최국 자격으로 편성되어 있어서 B조에 배정되었다.[37] D조, E조, F조에는 이미 유럽 팀이 2팀 배정되어 있어서 G조에 배정되었다.[38] AST(아라비아 표준시) 기준 2022년 11월 24일 목요일 16:00.[39] AST(아라비아 표준시) 기준 2022년 11월 28일 월요일 16:00.[40] 이는 월드컵에서 감독이 퇴장 당한 최초의 사례이다.[41] AST(아라비아 표준시) 기준 2022년 12월 2일 금요일 18:00.[42] AST(아라비아 표준시) 기준 2022년 12월 5일 월요일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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